둘째가라면 ‘정말’ 서럽다?

2004년 여름 새벽녘, 잠을 설쳐가며 올림픽을 즐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을 실감할 것이다. 1위 결정전에서 탈락한 선수들을 보는 국민들은 금메달을 눈 앞에서 놓친 것이 못내 서럽고, 선수들은 그에 더해 금메달이 아니면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 홀대 때문에 서러움이 배가 된다. 한 은메달리스트의 소감은 그 설움의 결정체다.

“실수로 금메달을 못 따 성원해준 국민에게 죄송합니다.” 조금 전까지 ‘첫째갗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던 그. 왜 은메달 딴 것이 죄송스러운 일로 둔갑하게 된 것일까. 

 얼마전 막을 내린 2004아테네 올림픽 관련 기사의 말머리는 대개 이랬다. ‘아쉬운 은메달, 은메달에 그쳐’에서부터 ‘메달 획득 실패’라는 짐짓 비장감이 도는 단어 선택까지, 게다가 ‘○○○, 너마저도’처럼 콕 찌르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메달, 특히 금메달을 중심에 둔 보도형태를 비롯해 새벽녘까지 잠못드는 ‘범국민적인’ 메달에의 집착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선 메달 획득 현황에 따라 국가별로 매겨지는 순위표에 눈길을 돌려보자. IOC 공식 집계에서는 금메달을 우선으로 메달 개수에 따라 각 나라마다 순위를 매긴다. 개인 대 개인의, 육체 간 순수한 경기를 표방하는 올림픽이지만 태극 마크를 유니폼에 새기는 순간부터는 그런 취지가 무색해진다.

“실제로 체험하는 운동이 아니라 관람하는 스포츠는 그 자체의 속성이 대리충족이며, 선수를 자기와 동일시 시켜 내부가 아닌, 외부집단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려 한다”고 문화 평론가 변정수씨는 말한다. 변동하는 순위표는 국가에서 나로 이어지는 싸움에 대한 실황중계표인 셈이다.

순위 메기는 방식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어차피 국가별 싸움이라는 토대는 같다. 이처럼 스포츠가 문화권력의 수단으로 군림하며 올림픽은 일종의 무혈전쟁으로 여겨지고 있다. ooo씨가 우승했다가 아니라 우리가 해냈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메달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엘리트 체육의 육성에 있다.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놀이’, 즉 즐기는 그 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 영웅을 만들어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구조적으로 늘 1등이 독식하며 권력화하는 것이 예사인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결승전도 아니고 메달유력 종목이 아님에도 삼사 방송사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 바로 축구다. 남자 축구 8강전이 열린 지난달 22일 새벽, 같은 시각에는 남자 핸드볼, 여자하키, 등 한국 선수들이 출전하는 종목 총7개의 경기가 진행 중이었지만 대개가 경기 결과만을 간략하게 보도하는 데 그쳤다.

만약 그 경기가 결승전이었다면 축구 중계는 잠시 다른 경기로의 외도를 서슴치 않았을 것이다. 올림픽 대회기간 중 가장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 방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기종목의 편중보도 방식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전체 보도기사에서 보이는 것처럼 경기 자체의 소개보다, 흥미를 끌 수 있을만한 경기 외적인 것(상업적·성적·선수사생활 등)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나친 상업화를 부추기고 있는 언론의 역기능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것은 순수아마츄어의 제전이 분명히 상업적인 이해관계와 맞물려있음을 뜻한다. 금메달 개수가 올림픽 스폰서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기업체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88서울 올림픽 당시 낮 동안 못 보는 경기를 예약녹화해 보라는 유혹으로 20%대를 밑돌던 VTR 보급률이 50%를 넘어선 사례도 간접적인 이윤 창출의 효과다. 

 이러한 메달 지상주의를 비웃으며 올림픽 꼴찌 선수들을 위한 해외 사이트가 개설되고 있다. 꼴찌별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금메달을 향한 기대치의 배경으로는 한갓 웃음거리에 불과한 이슈지만, 대중들 스스로 스포츠 자체를 향유의 수단으로 보기 시작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가라는 공동체에 결탁하지 않고 내재적 성찰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낸다면. 인종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선수들 개인의 땀방울의 의미를 깨달을 것이다. 금메달이 곧 국위선양이라는 판타지에서 벗어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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