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휴일을 맞아 막바지 피서가 한창이던 지난달 15일, ‘파병철회 반전평화 2004년 자주통일 노동자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세종로 사거리를 찾았다.

각지에서 올라온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합원과 한총련 학생 등 7000여명은 사거리를 가득 메운 전경버스와 수많은 정경들에 둘러싸인 채 정부의 이라크 파병 철회와 굴욕적인 한미동맹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집회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쯤 잘못된 한미동맹을 규탄하기 위해 미국대사관까지 진출하려는 집회참가자들과 이들을 저지하려는 전경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몸싸움은 점차 격해져 경을 밀어붙이는 집회참가자들을 향해 전경들의 몽둥이와 고압의 물대포가 날아들었다. 곧 전경들이 발사한 소화기 분말가루가 거리를 뿌옇게 뒤덮었으며 여기저기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전경이 휘두르는 몽둥이도, 머리가 터져나가는 집회참가자도 아니었다. 바로 길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혀를 끌끌 차던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집회참가자들의 절규어린 목소리는 외면한 채 오직 ‘싸움’ 그 자체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더불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온통 뜯겨져 나가는 보도블럭과 거리의 교통체증, 시민들의 불편들 뿐이었다.

  이러한 시민들의 태도는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부 기자로서 수많은 집회현장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시민들의 태도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웃 내지는 친척일 수도 있는 집회참가자들이 부르짖는 신음소리에 시민들이 이렇듯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운동권에 대한 일부언론의 편향된 보도는 국민 대부분의 의식 속에 고정관념을 낳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날 사회운동이 시민들에게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과 단절된 채 ‘그들만의 축제’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회현장을 무심히 지나쳐 가는 시민들만 보아도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렇듯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들의 치열한 고민과 아픔은 오늘도 아스팔트 속으로 안타깝게 묻혀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소외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정치인들 역시 노동자들의 외침 따윈 관심이 없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그들의 노력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다. 그 고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그들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다만 변화에 대한 그들의 갈망에 진정 힘이 실리기 원한다면 시민들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단순히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 대상이기 보다는 함께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탄핵 정국, 우리는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을 보았다. 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 가정을 돌보던 주부들, 심지어 아이 손에 들린 촛불은 정치권을 바싹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총선을 통해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렇듯 운동권 역시 변화하는 사회흐름을 직시하고 고민해야할 중대한 시점에 서있다. 사회변화를 갈망하는 그들의 용기가 진정으로 시민들의 관심과 결합될 때, 그들이 외치는 어떤 구호보다 큰 힘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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