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역사라는 장엄한 이름의 소를 잃어버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외양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소 찾기에 급급하다. 겨우 찾은 듯 보인다. 하지만 또 잃어버릴 것이다. 다음 차례는 발해라는 이름의 소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다. 그 외양간 고치지 말자고. 엉뚱한 주장처럼 비춰지겠지만 진심 어리게 말해서 외양간 고치지 말자. 무너뜨리자. 말인즉, 외양간으로 상징되는 역사를 소유하는 구조를 바꿔나가기 위해 외양간을 무너뜨리자는 것이다.

최근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의식 속에 강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민족주의 역사관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제는 고구려사가 “누구의 역사냐”를 논하기보다는 “왜 누구의 역사여야 하는갚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해야할 때다.

 19세기 이후 급속히 진행된 제국주의는 민족을 일깨웠고 국가를 일깨웠다. 20세기 초 몇몇 민족 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의 굽히지 않는 민족성을 이야기하며 국민에게 힘을 주었다. 그 뒤 20세기는 물론이고 21세기에 이르러서도 민족과 국가는 계속됐다. 일제 강점기 이후의 민족과 국가는 지배 권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왔다.

단군도 광개토대왕도 이순신도 이전보다는 특별하게 평가받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의 의식 속엔 그 동안 있어본 적이 없는 한 민족, 한 국가라는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하였다. 고구려사는 명백히 한국의 역사가 된 것이다.

 왜 우리는 고구려사에 집착하는가. 고구려사는 우리의 뿌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그런 역사를 도둑질해가는 중국의 행동에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족주의적 시각에 기반을 둔 역사 인식은 상당한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일단 우리 것이면 위대했다. 근대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은 언제나 자기네 민족과 국가가 잘났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기네 민족과 국가가 잘난 만큼 남의 것은 못난 것이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기억하자. 우리 주위의 고통 받는 이주노동자들을 상기하자. 이것이 민족주의 역사관의 속성이다.

광개토대왕도 징기스칸도 알렉산더대왕도 그들은 모든 인류의 본보기로 평가받아야지 어느 한 국가와 민족의 이익에 따라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이라면 근대의 산물인 민족주의 역사관을 차츰 버려야 할 때이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잃을 수 없다며 분노하지 말자. 뿌리는 뿌리일 뿐 우리의 소유물은 아니다. 고구려사는 ‘대한민국’이나 ‘중화민국’의 역사가 아니라 그저 ‘고구려’의 역사일 뿐이다. 우리는 고구려사를 온전히 조명해야한다.

이 글을 쓴 김태환씨는 문과대 사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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