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롯폰기 힐스Roppongi Hills, 관광 안내서를 다시 써야 할 만큼 일본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각되고 있는 복합도시이다. 계획하여 완성하는 데만 17년이 걸렸다는 롯폰기 힐스는 일터와 주거지, 문화공간과 휴식처, 교육시설, 상업 공간이 교묘하게 어우러진 계획된 별천지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모리라는 일본 부동산 재벌의 자본주의 전략이 숨어있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취했고 이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 중의 하나는 거리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된 공공미술이다. 그 이유가 어찌됬든 간에 이들은 미술을 단순한 감상의 문제를 넘어 삶의 일부, 공간의 일부로 할애하는데 신경을 쓴 것이다. 그리고 다츠오 미야지마의 ‘카운터 보이드’라는 작품은 그중에서도 다시 한번 문화로서의 현대미술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 작품은 우선 그 규모면에서 시선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다. 3.2미터의  네온 튜브가 마치 벽처럼 빌딩의 외곽을 감싸고 있다. 거리에 면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뿐만 아니라 낮에는 옥색 바탕에 흰색으로 보이는 조금씩 달라지는 숫자들이 밤에는 흰색 바탕위에 검은색 숫자들로 바뀌기 때문에 그 시각적 효과 역시 대단하다.

물론 이 작품이 주목을 요하는 것은 이와같은 눈에 잘띄는 가시성의 요인들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난해하고 그래서 삶과 연관이 없다고 종종 느끼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현대미술의 다른 면모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은 예술이 삶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끌어내도록 하는데 있고 이를 위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숫자들과 숫자들의 변화는 그의 시간에 대한 성찰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예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시각화시키는 것이다. 다소 동양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은 듯한 이 메시지는 시간은 늘 순간성을 띠면서 점멸해간다는 것이다. 미야지마식의 숫자 세기에 0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0이 없음의 의미가 아나라 영원히 지속해가는 시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부터 9까지의 숫자가 깜빡이는 속도도 각기 다른데 이는 인생의 속도가 모두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을 LED 테크놀로지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조각으로 가시화시키고 이를 통해 시간으로 가시화된 삶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는 것이다. 거리를 지나가나 우연히 이 작품을 마주친 사람들은 거대한 조형물과 LED로 점멸하는 숫자들을 바라보면서 이내 시간의 어떤 순간을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언제나 순간으로만 점멸하는 우리내 삶에 대한 간단하지만 깊이 있는, 지금 여기(Hic et Nuct)에 대한 느낌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찰나이면서 언제나 영원히 변해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미야지마 작업의 강점은 이처럼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어려운 이야기로 변주되는 것을 경계할 뿐만 아니라 미술에서의 테크놀로지의 역할이 그 물신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명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수단으로 한정된다는 그 단순함에 있다. 그 단순함과 첨단 테크놀로지의 유쾌한 결합이 그를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 반열로 이끈것도 어찌보면 결코 우연은 아닌 듯 싶다.

이 글을 쓴 민병직씨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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