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시대와 현실을 선도하기보다는 뒤따라가기도 바쁘다.

대학 외부의 거대한 힘인 권력(교육부, 정치권)과 자본(지원비, 연구비)에 의하여 대학의 운명이 담보되어 있다. 대학 평가와 연계된 재정보조체계 그리고 연구비 수주경쟁으로 인해 대학의 주요기능인 진리탐구, 이론 창출, 비판 교육 등의 기본적 책무마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으며 대학의 자율성은 근본적으로 훼손당하고 있다.

만성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많은 대학들이 외부의 재정지원을 따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아 할 입장이고 많은 교수들도 산학협동이라는 기치 아래 기초학문 연구보다는 실용적 프로젝트 위주로 연구비 사냥을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

이제 대학은 진리의 전당인 상아탑에서 벗어나서 거대한 이전투구의 시장판으로 바뀌고 있으며 교수들은 이미 비판지식인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전공논문 제조기능공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위기의 근본원인 중의 하나는 재정문제이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정부가 공교육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사립대학의 재정을 획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지원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최하위권이다.

대학의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정부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평가라는 수단을 통해 대학의 줄을 세워놓고 선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대학은 자구책으로 기업, 동문, 일반시민들로부터 기부금을 모금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이 현 단계에서는 대학재정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대학생의 숫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등록금을 무턱 대고 올릴 수만도 없다. 특히 일부 사립대학 재단들은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아서 이제 정부의 보조금이나 기업의 기부금에 한층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최근 교육부가 대학개혁을 위한 제2기 대학평가 일정을 발표하였다. 앞으로 있을 대학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을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기술교육대학으로 분류하여 재정지원을 차등화 하겠다는 계획하고 있다. 각 대학의 전통이나 특성을 무시한 채 대학들을 반강제적으로 기능적으로 배정한다고 한다.

미래에는 연구중심 대학은 소위 신 일류대학이 될 것이고 교육중심 대학은 소위 이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연구와 교육을 분리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학에서의 연구와 교육은 상호간에 절묘한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에 대한 무리한 기능적 분리정책은 오늘날 노무현 정부의 대학개혁과 평가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무한 경쟁이라는 새로운 지배이념으로 무장한 채 대학과 교수를 재화생산과 이윤창출이라는 자본주의의 기술주의 첨병으로 만들기 위한 거대한 집단 수용소로 만들 것인가?

이 시점에서 치열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대학은 무엇보다도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교육시켜 감성, 지성, 영성을 모두 지닌 전인격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대학이 교육을 게을리 하고 사회적 요구에만 지나치게 따르다보면 우리의 희망인 학생들마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생산과 이윤창출을 위한 기능인으로 배출될 것이다.

우리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사회와 문명을 바로잡기 위한 비판적 지식인으로 키워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권력과 자본에 농락당하게 될 것이다. 대학은 열정에 찬 교육의 공적영역이 아니라 연구소라는 폐쇄된 기능적 공간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중앙대학교는 2005년 하반기에 실시될 대학평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현재 대학 당국에서는 연구중심 대학으로 선정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것이 잘 되기를 기원하지만 중앙대학교는 만일을 대비하여 이번 기회에 교육중심 대학으로 정착시킬 대안적 계획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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