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과거사 진상 규명을 주제로 벌어진 MBC 100분 토론에서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친일진상규명법의 범위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성매매와 정신대를 동일시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날 이교수가 강조한 것은 역사 청산문제와 관련해 민간인의 경우에도 면죄부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와 관련지어 상업적 목적의 공창 형태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그의 발언이 나가자 패널들을 포함, 자리에 있던 관객들은 일순간 술렁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의견은 지금껏 수십년간 논의되고 증언을 토대로 발굴되었던 일련의 민족사적 작업들을 전면 부정함으로써 기존의 과업들을 이율배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간 죄를 범한 자보다 피해를 당한 입장에서 오히려 죄인인양 한 평생을 숨기고 또 병들어 살았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눌 수 없는 상처에 또다시 돌을 던진 것에 대한 분노가 컸다. 일본 보수우익 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기에 충격은 더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는 방송이 있은 직후 성명서 발표를 통해 몰역사적·반인권적 발언을 한 이교수가 직접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교수직에서 자진사퇴해야 할 것임을 주장하며 규탄의 움직임을 벌이고 있다.

이교수가 시종일관 견지하던 과거청산에 있어서의 민간 차원의 반성적 성찰, 자기고백이 빠진 데에 대한 냉소 등은 사실 한쪽 면만 보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내세우는 근거를 들어보자. 일본에서는 위안소를 방문한 사람들의 고백록이 있어 2000명 개개인이 반성하는 차원에서 글을 남겼고, 때문에 전쟁 범죄를 소화하고 극복한 반면 한국 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는 민간인 차원에서의 ‘성찰’이 국가적 정세로 응집되기에는 얼마나 미미한 것인가를 증명해주는 일 밖에는 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진정 과거 악행들을 반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이 들만한 요소는 얼마 없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 등 태평양 전쟁의 피해국들이 모두 주시하는 가운데에서도 신사참배를 거르지 않는다. 그런 점이야말로 과거사 청산과정에서 정치권으로 이목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외교적 측면에서 실효성 없는 성찰 따위는 티도 나지 않는 셈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게시판에는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개진 중에 있다. 그 중 ‘역사를 공부하든지, 자기를 찌르라’며 이교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동료교수의 발언을 비롯해 이러한 논란이 자국의 여자를 보호하지 못한 데 대한 자격지심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교수의 뒤를 잇는 망발이 서슴치 않게 행해지고 있다.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곳이 최고 학벌을 자랑하는 대학의 앞마당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교수는 일찍부터 ‘일제식민시기 경제 성장률이 높았다’는 주장을 펼치며 식민지 근대화론에 앞장서온 친일 학자이다. 지금껏 수많은 논란들의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나와 공론을 펼쳤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국내 유수의 대학 강단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지식인이란 가면을 쓰고 우리 사회의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발언을 넘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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