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자식'과 같은 욕설은 너무나 악의적이고 가부장적 편견에 사로잡힌 말이다. 이 용어는 ‘호노자식(胡奴子息)’이나 ‘호래자식’이 변형된 것이다. ‘호노자식’은 ‘오랑캐(만주족)의 자식’으로 해석이 되고, ‘호래자식’은 ‘홀(獨)’과 자식의 합성어로 유추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버지가 없으면 근본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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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아무리 어머니가 있어도, ‘본데없이 막되게 자라서 버릇이 없는’ 아이가 되며,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 한다. 

1964년에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을 보면, 신성일의 거칠고 어두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장면이 있다. 청순하고 가녀린 부자집 아가씨인 엄앵란이 신성일이 사는 동네로 찾아왔다.

이 때, 대여섯살 정도로 보이는 흑인 여자아이가 신성일을 “아빠”라고 부르며 달려온다. 당황해하는 엄행란에게 “저기 손 흔드는 마담의 딸인데, 나만 보면 아빠라고 불러요”라고 설명하며 민망해한다. 감독의 의도는 거친 뒷골목의 사나이와 곱게 자란 부잣집 딸의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장면이었을 테지만, 아주 우연하게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가 배경처럼 등장한 셈이다.

이처럼 1960년대에 제작된 영화들 중에는 사회를 반영하는 소재로서 기지촌 혼혈인들이 종종 등장한다. 시대의 한 특징이 될 정도로 1960년대는 기지촌 혼혈인들이 본격적으로 많이 태어나던 시기였던 것이다. 기지촌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합법적으로 장기 주둔할 수 있게 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기지촌은 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미군을 위한 성적 서비스를 통해서 경제적 이익을 창출했다. 게다가 국가는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기지촌에 면세조치 등 다양한 혜택을 주었다. 이렇듯 기지촌이 성매매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갖추기 시작하면서 기지촌 혼혈인들의 출생이 증가했다.

지   역

국적별 현황

한국

러시아

필리핀

의정부

46명

39명

67명

동두천

52명

75명

209명

경기북부 외국인 전용클럽의혼혈인 국적별현황 (자료:두레방, 03.11.30)

문제는 기지촌 혼혈인들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버지, 국가로부터 버려졌다는 것이다. 기지촌 혼혈인의 경우 아버지의 부재에 따른 문제가 심각했다. 한국 여성과 미군 남성의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혼혈인의 경우 미국시민권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호적에도 등록될 수가 없었다.

한국 내 여성의 지위가 남성, 부계에 법적으로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적에 어떤 사람을 들이거나 거부할 권리, 호적에서 누군가를 삭제할 권리, 거주지를 결정할 권리 등은 남성에게 주어졌다.

"문제는 기지촌 혼혈인들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버려졌다는 것이다"

또한 호주권의 의무적 승계는 기본적으로 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여성을 사회적으로 소외시키는 본질적인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 진출이 허락되지 않은 혼혈인들 더욱 억압하는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난 혼혈인들은 대부분 호적상으로 외삼촌의 자녀이거나 외할아버지의 자녀로 되는 편법을 이용하여 호적에 올렸다.

어머니가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외가, 즉 어머니의 남자형제나 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고아’로 일가창립을 해야 했다. 한국정부에서는 1980년부터 혼혈인들이 어머니의 호적에 자녀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호적의 아버지란에는 아무런 표시를 할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아버지의 공란은 법적으로는 한국인으로 규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다.

게다가 기지촌 혼혈인은 또 다른 편견으로부터 억압을 받았다. 그것은 기지촌 성매매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서 비롯된다. 기지촌 성매매 여성을 다른 민족과 ‘피’와 ‘살’을 섞어서 ‘순혈주의’를 깨뜨리는 ‘더러운’ 것이라고 보는 편견이 있다. 여성의 순결과 인종주의적 인식이라는 이중적 차별조건으로 인해 기지촌 성매매 여성은 더욱 심리적으로 주변화되었으며, 한국인이라는 인식 밖으로 추방당했다.

성매매의 결과물이자, ‘아비 없이’, 더군다나 ‘아비가 한국 남성이 아닌’ 기지촌 혼혈인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어떠한 문화적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혼혈인들은 인종적,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할 모든 기회로부터 배제되어 정서적으로 고립감과 소외감을 갖게 된다.

기지촌 혼혈인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형성 기회마저 빼앗긴다

기지촌 혼혈인들의 삶에서, 특히 여성은 또 다른 억압을 받게 된다. 파주시 문산에서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30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하얗고 앳된 얼굴이었다. 이 얼굴이 너무 어색했다. 그녀가 혼혈인이어서가 아니라, 비슷한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왠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혼혈인으로서 살기보다 여성으로서 살기가 더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번은 그녀가 미장원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원장이 남자를 소개시켜주었단다. 그런데 그는 나이가 많은 장애인이었다. 비장애인이었던 그녀는 자신이 ‘혼혈인’이라는 사회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남성을 소개받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성으로서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그녀는 너무나 분했다. 그 뿐이던가.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을 ‘쉬운’ 여자로 여기면서 데이트를 하더라도, 결혼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남자는 더욱 무시한다는 거다. 이렇게 무시당하고 살 바에는 혼자서 삶을 꾸리겠다고 했다.

요즈음에는 기지촌이 새롭게 변화되면서, 한국 성매매 여성과 미군 남성 사이의 혼혈인들은 거의 태어나지 않고 있다. 이주 여성들이 한국 여성을 대체하였고, 따라서 이주 여성과 미군 남성 사이의 혼혈인들이 태어나고 있다. 이 혼혈인들의 상황은 극단적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미군 남성은 떠나버리면 이주 여성들은 홀로 한국에서 혼혈아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기지촌 혼혈인. 이 문제는 가부장제, 순혈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적 이데올로기, 군사주의 등의 다층적인 문제들이 빚어낸 것이다. 이렇듯 엉켜있는 실타래같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긴급한 것은 성차별적인 문화적 인식을 변화시키고 인종주의적 편견을 없애는 것이다.

이 글을 쓴 김일란씨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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