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제1캠퍼스 학생식당 앞에서는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 공사를 막기 위한 ‘도롱뇽 소송인’ 모집 운동이 펼쳐졌다고 한다. 프리랜서 사진작가와 서강대 대학원생이 의기투합, 9월 한 달간 서울시내 대학을 순회하면서 소송인을 모집키로 하고는 첫날 서울대학에 이어 우리 학교를 방문한 것이다.

이 작은 행보의 이면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의미가 자리잡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런 운동이 행해진 첫 번째 이유는 정부가 경부고속철도를 경남 양산 천성산을 관통해서 놓으려는 데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그 공사에 반대하여 지율스님이 6월 30일부터 시작해 57일 동안 단식투쟁에 들어간 데 있다.

스님은 공사를 일단 중단하고 환경평가서를 다시 받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듣고 58일째 되는 날 단식을 거둬들였다.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간 청와대 앞 단독 농성이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런 사태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이었다. 국민들 대다수가 단식투쟁을 한 스님을 옹호하지 않는 대신 국책사업을 막고 나선 스님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이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조선일보가 ‘적막한 천성산 터널공사 일시중지 현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뒤 신문사 홈페이지에 그것을 올리자 네티즌들의 스님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환경단체가 이 나라의 물류문제를 풀어줄 건가? 진짜 짜증나게 하누만”이란 네티즌의 말에 128명이 찬성했고 6명이 반대했다. “환경단체와 지율스님은 천성산의 환경을 파괴하는 절들과 절로 들어가는 도로들을 먼저 폐쇄하라!”는 비판에 211명이 찬성, 13명이 반대했다. “공사 초기부터 막던지 하지 그 할일 없는 시민단체, 환경단체가 정말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말은 무려 354명의 지지표를 얻은 반면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고작 14명이었다.

네이트닷컴 뉴스의 ‘나도한마디’ 난에 올려져 있는 글도 스님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 신문의 사설도 ‘천성산 공사 중단은 나쁜 선례’, ‘누구를 위한 불사인갗 등 스님의 행위에 대한 비난과 정부측 입장에 대한 옹호가 주류를 이루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판단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목숨을 담보로 한, 한 인간의 절박한 호소를 이렇게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국책사업이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이 절대적인 믿음은 인간의 오만함과 무지로 인한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환경’과 ‘생태’는 거의 비슷하게 쓰이고 있지만 누구를 중심으로 한 것이냐를 따져보면 커다란 차이가 있다. ‘환경’은 인간 주변의 환경을 뜻하므로 다분히 인간 중심의 낱말이며, ‘생태’는 자연 생태계를 뜻하므로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는 낱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방식은 생태보다 환경을 늘 기준으로 삼는다.

생태계 파괴보다는 환경 오염이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골프장 건설과 그린벨트 해제 등에 따른 생태계 파괴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중국에서 날아오는 매연과 황사는 크게 문제삼는다. 이 관점의 차이는 곧 두 낱말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더 확대해보자. 생태계가 망가지면 가장 큰 고통을 겪을 생명체는 바로 인간이 될 것이다.

나는 환경단체의 회원도 아니고 확고한 신념을 가진 환경론자도 못 된다. 이 지구의 주인이 인간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국책사업이 조금 바뀌어 우리가 낸 세금이 더 쓰이더라도 천성산의 도롱뇽이 보금자리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학교에서 벌어진 도롱뇽 소송인 모집 운동이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로 큰 성과를 거두었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쓴 이승하씨는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