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기록부 반영 비중 확대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는 대입 제도 개선 방안이 지난달 26일 발표되면서 고교 등급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최근 실시된 수시 1학기 모집에 고교간 학력격차를 적용했다는 의혹을 살만한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고려대 총장은 지난달 28일 뉴욕특파원 간담회에서 ‘고등학교 간 학력격차를 입시에 반영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뒤이어 연세대 수시 모집에서도 경기도 모 고등학교에서 상위 1.7%의 학생이 1차 서류전형에서 탈락했으나 강남의 한 고등학교 학생은 4.2%였음에도 합격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이밖에도 서울 D학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강북권(경기 포함) 학생은 석차백분율 4.96%가 탈락한 반면 강남권(특목고 포함) 학생은 12.5%가 합격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이러한 자료만 보더라도 고교 등급제 시행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의혹’이 아닌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고교간 학력격차를 인정하는 고교 등급제 실시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로는 첫째, 강남 집중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 수시 입학에서 드러난 강남·비강남권 학생에 대한 차별은 이를 증명해준다. 더욱이 강남거주 이유의 56.5%가 자녀 교육 때문이라고 나타난 주거환경연구원 자료를 보더라도 이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두 번째 문제로는 과연 학교를 서열화 시켜 놓고 인재를 길러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인성과 창의력, 리더쉽 등 여러 방면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한 번 순위가 매겨지게 되면 높은 순위의 학교는 유지하기 위해, 낮은 순위의 학교는 올리기 위해 학생들을 입시전쟁터로 내 몰 것이다.

다양한 견문과 지식을 넓혀야 하는 고등교육 때 말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려는 대입 제도 개선방안의 취지와 어긋나는 것이다. 이밖에도 고등학교 등급에 따른 차별화로 인해 학벌사회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고교 등급제 논란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2002년도 대입 제도 개선안이 발표됐을 때에도 서울대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된 2008년도 대입 제도 개선 방안에 따라 일부대학에서 ‘고교 등급제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밝히면서 또다시 대두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교육부에서는 태연하다. 이미 3년 전부터 대학에서 수시 서류전형 때 고교 등급제를 적용한다는 제보가 있어왔지만 한 차례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구체적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고교 등급제 실시에 따라 불이익을 당했던 한 고등학생의 진정서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저 학생의 신원과 진정 내용을 대학측에 전달만 했을 뿐이다. 이것은 교육부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가 되지만 신원을 대학에 넘겼다는 것은 이 학생이 재응시 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교육부는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고교 등급제 시행의 증거들에 대해 더 이상 뒷짐 지고 물러서 있어서는 안 된다. 15번이나 입시제도만 바꾼다고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이제는 알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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