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광복절, 목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는 나라의 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3·1절의 영광을 재현이라도 하듯 짐짓 비장한 어투의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1919년 그날의 선언서와 차이가 있다면 앞에 붙는 수식어, 바로‘예술갗 독립선언문라는 점이다.

 ‘우리는 삭막한 도시에 예술로 새 생명을 불어 넣고자 하는 예술가들이다.’라고 시작하는 이 선언문은 5년째 방치되고 있는 목동 예술인 회관을 점거해 예술가, 자신의 작업 공간으로 만드려는 시도인 점거아틀리에 오아시스프로젝트의 입주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점거활동(스쾃)을 통해 비어있는 공간을, 돈 없는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본래 자본주의의 과도한 사적 소유에 대항해 시도되던 점거 활동이, 예술활동으로 그 범위를 넓히며 문화적인 재생산의 의미를 가지고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스콰드(squat, 점거) : 허가받지 않은 장소를 침범하는 것.

산업 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대두로 근대사회에서 계급적인 구분이 생겨난 이후, 도시 노동자들은 공간을 둘러싸고 생존권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공간점거 운동, 빈집점거 운동 등 ‘스쾃 운동’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처럼 실제 ‘점거’라는 단어 자체의 뜻보다 공간의 일시적인 점거를 통해 사회적으로 저항하는 운동적 측면이 강했던 스쾃은 이후에도 68혁명을 지나며 여러 지식인·혁명가들이 투쟁적 산실이 되어왔다. 

최근에는 그 방법이 다양화되어 예술적 점거활동의 형태를 띠고 운영되기도 하는데, 프랑스 파리의 중심부에 위치한 ‘로베르의 집’은 가장 대표적인 점거 아틀리에 중 하나이다.

방문객들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이 예술공간은 각종 무료 숙박시설과, 전시장, 공연장을 갖추고 시민들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지역주민들의 일상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재생된 문화공간의 개념으로 발전해감에 따라 스쾃은 항거의 목소리를 내는 한 방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점거 활동은 폐교나 탄광촌 등지의 예술가마을처럼 기존에도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특히 대대적인 규모로 행해진다. 실제 예술인 회관 건물주인 예총과는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어 사적재산침해라는 법률적 문제로까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1998년, 예술가들의 공연·전시공간과 더불어 창작여건을 조성한다는 취지 아래 수백억에 해당하는 정부의 지원금으로 건축되기 시작한 예술인 회관은 해당건설사의 부도로 2년만에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5년간 뚜렷한 대책 없이 비리의혹과 루머가 떠도는 ‘유령건물’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회관. 예총측은 지난해 11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해11월에 공사에 다시 착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임대료’를 받음으로써 예술공간을 지원한다는 자체에 의혹을 가지던 예술가들의 관심은 이미 멀어진 후였다. 여전히 방치되고 있던 회관 건물은 미술가 김윤환·김윤숙씨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올해 초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분양안내’를 내 예술가들의 입주 신청을 받아, 지난달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현재는 미술, 음악 등 여러 예술장르의 작업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법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본래의 설립목적대로 예술가들을 주인으로 두고 있는 예술인 회관은 더 이상 도시의 애물딴지가 아니다.

점거프로젝트 참여 작가 김현숙씨는 점거 프로젝트가 ‘자본의 간섭 없이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예술가 본연의 ‘자율성’ 에 기반한 예술을 실험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시민사회 정착 안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바짝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건조한 도시의 흉물스런 공간이 지금은, 창작자들의 수분을 한껏 머금고 활기를 얻고 있다. ‘비어있는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공간재생 프로젝트’를 표방하는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메마른 예술작업공간에 물줄기를 대어줄 수 있을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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