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기표를 분석하는 작업으로 사회문화연구에서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 기호학의 프리즘이 어떠한 의의를 줄 수 있을까. 대중 스포츠인 축구를 통해 기호학적 연구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편집자주>

1960년대 태동한 파리학파의 기호학은 이제 의미의 생성과정을 다루는 하나의 학문분과로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초기 기호학은 간단한 민담이나 언어적 담화를 분석 대상으로 다루었으나 이론의 발전과 더불어 비언어적 담화까지 그 분석 대상을 넓혀 갔다.

따라서, 회화, 영화, 만화, 건축, 광고 등이 새롭게 기호학의 주요 분석대상으로 떠올랐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문화현상, 아니 의미를 발하는 모든 것이 기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포츠의 제 현상 역시 기호학적 해석을 받기에 충분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스포츠 행위들은 모두 의미를 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포츠는 기호학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여기서 우리는 스포츠의 행위주역들을 살펴보고자한다. 특히 축구를 통해 단체경기의 팀을 기호학적으로 해석해 볼 것이다.  

팀은 집단행위소이다

축구 경기를 구성하는 팀은 집단행위소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집단행위소가 되는 첫 번째 기준은 프랑스 기호학자 쟝-끌로드 꼬께가 주장하는 것처럼 적어도 둘 이상의 행위자가 집단행위소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해지지 않은 다수의 행위자로 이루어기도 한다. 축구 경기는 각각 11명으로 이루어진 두 팀이 그라운드에서 경쟁하는 종목이라는 점에서 축구의 담화에는 두 집단행위소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팀은 단지 축구 규정이 정하는 선수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감독, 코치와 같이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지 않아도 집단행위소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있다. 그리고 팀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집단행위소가 존재한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관중이라는 행위자가 바로 축구라는 담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주역이다. 관중은 경기마다 그 수가 변화하듯이 수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수적 기준은 집단행위소 구성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하므로 양태성이라는 두 번째 기준을 살펴보아야 한다. 두 번째 기준에 따르면 공통의 양태적 능력이 집단행위소를 구성한다. 따라서 공통의 양태적 능력을 구성하는 기호학적 양태성을 검토해야 한다.

축구의 경우 각 선수들이 어떤 팀에 소속되기 위해서 갖는 ‘하고 싶다’ 라는 양태성이 가장 적극적으로 집단행위소 구성에 참여한다. 이어서 계약이라는 법적 제약이 ‘해야 한다’ 라는 양태성을 부여한다. ‘할 수 있다’, ‘할줄 안다’의 양태성은 각 선수들이 함께 공유하는 전술 운영 및 실행과 연관된다. 이러한 양태성을 공유하면서 각 팀의 선수들은 하나의 집단행위소를 구성하는 것이다.

선수들의 행위자 역할

집단행위소의 구성 이후에 우리는 그 안에서 독특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팀을 구성하는 각 선수들이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갖고 그것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우선 수비수, 공격수, 문지기의 단순한 역할 구분이 가능하다. 수비수는 다시 측면 수비, 중앙수비로 나뉘어 질 수 있고 리베로라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는 수비수도 존재한다.

공격수 역시 중앙공격수, 측면 공격수 등의 구분이 가능하다. 우리는 또한 미드필더라는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미드필더 역시 수비에 치중하는 역할과 공격에 치중하는 역할로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주로 상대방과 다툼을 통해 볼을 빼앗는 역을 한다. 후자는 전방 공격수 뒤에 위치하면서 공격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문지기는 한 팀의 골문을 지키며 실점을 막는 역을 한다.

여기서 그 역할들에 대한 두 가지 주목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집단 행위소를 구성하는 각 선수의 역할, 즉 행위자적 역할은 이중의 한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공간적, 주제적 한정이 각 선수에게 오른쪽 수비수, 왼쪽 공격수 등의 꼬리표를 부여하는 것이다.

오른쪽 수비수라는 것은 공간적으로 자기진영의 아래쪽, 그리고 오른쪽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이다. 그리고 주제적으로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는 역할이다. 왼쪽 공격수는 상대 진영의 오른쪽, 즉 자기진영의 왼쪽 높은 위치에서 경기를 한다. 동료들로부터 공을 이어받아 득점을 하는 것이 이 선수의 주제적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선수, 감독, 심판의 행위소적 역할

이 세 행위자들은 팀이라는 집단행위소를 놓고 서로 관계를 맺게 된다. 먼저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공 다툼을 하면서 경기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팀원으로서 집단행위소를 구성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감독이 선수들과 공유하는 ‘하고 싶다’ 라는 양태성이 이를 증명한다. 계약이라는 절차 역시 감독의 집단행위소 구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할줄 안다’ 라는 양태성이 문제될 때 우리는 선수와 감독 간에 또 다른 관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지식의 이동은 기본적으로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의 이동 방향은 늘 발신자로부터 수신자로 정해진다.

발신자의 지위는 수신자보다 상위이므로 이러한 단 방향 이동이 이루어진다. 축구의 경우 감독은 팀의 전술을 세우고 그것을 선수들에게 주지시켜 경기에서 발휘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므로 팀의 가치를 세우는 발신자라는 행위소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심판의 존재를 고려하면 감독의 행위소적 역할은 변화한다.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경기의 가치 체계를 정의하고 보장해 주는 것은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심판은 FIFA가 정한 규칙을 경기에 적용한다는 한에서 위임된 발신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행위자가 여럿의 행위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융합의 개념을 상기한다면 감독의 행위소 역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먼저 감독이 선수들과 그 역할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해도 심판과의 관계에서 볼 때는 팀이라는 집단행위소를 구성하는 행위자 일 뿐이다.

다시 말해 심판이 정의하는 가치체계를 준수해야 한다. 이에 대한 위반이 있을 경우 심판, 즉 발신자의 제재가 있다. 단순한 구두 경고부터 퇴장이라는 극단적인 제재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실제 경기에서 감독이 경고를 받거나 퇴장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팀 내에서 선수가 감독의 뜻에 따르고 경기 중에 선수와 감독이 심판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기호학적 위상에 기인하는 것이다. 가치 체계를 세우는 발신자의 위상은 늘 상위적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를 기호학적 담화 연구에 도입할 때 두 가지 이점을 제시할 수 있다. 하나는 기호학적 외연의 확대이다. 적용 범위를 스포츠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하면서 이론의 보편성을 보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스포츠 경기의 기호학적 조명이 스포츠의 좀더 심층적이고 다양한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미의 생성과정을 다루는 기호학이 다양한 스포츠의 발현과정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팀의 행위소적 구성은 스포츠 기호학의 작은 부분을 구성할 뿐이다. 우리 앞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스포츠 현상들의 기호학적 재구성은 이제 우리에게 과제로 남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송치만씨는 건국대에서 불어불문학과 강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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