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도만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유치진만큼 그 이름이 익숙한 극작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명성이 그나 그의 작품에 보낸 대중들의 관심의 양과 정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다.

돌아보건대, 우리 희곡사에 있어 유치진만큼 교과서로부터 사랑받았던 극작가도 드물었고, 사실상 그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 대부분도 교과서를 통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교과서는 왜 유치진과 그의 작품들을 선택했을까? 현행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세 편의 희곡 중 한편인 <원술랑>을 다시 읽는 일은 이 질문에 대한 흥미있는 단서들을 제공한다.

유치진은 자신이 역사극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조선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준동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예술사적으로 볼 때 역사물의 출현, 즉 문학에 있어서의 역사 서술은 다분히 ‘위기’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위기’란 곧 현재라는 시점의 단절이나 전망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일 것이다.

결국 역사물이란 전적으로 ‘현재’라는 존재에 의해 이루어진 전유의 결과물이자 담론적 실천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유치진과 <원술랑>의 현재는 무엇이었을까?

<원술랑>에 대한 우리들의 첫 번째 기억은, 아마도 이 작품이 ‘애국’이라는 주제에 긴박된 텍스트라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원술랑>은 남북이 각각 별도의 정부를 구성하고난 뒤 정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였던 1950년에 국립극장 개관 기념 공연작으로 창작된 작품이다(또한 유치진은 국립극장의 초대 극장장이었다). 당연히 훗날 유치진 스스로도 ‘쇼비니즘적 성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다분히 ‘국정교과서’적인 작품인 셈이다.

작품 속에서 민족의 수난 앞에 통일과 외세 축출을 이야기하는 원술의 언술은 타당하고 건전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작품이 민족의 수난이라는 위기 상황을 빌미로 개인을 민족의 구성원으로 강박·호명하고, 심지어 한편으로는 공격적이고 한편으로는 희생적인 애국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짐작하겠지만, 이 애국의 진짜 이름은 바로 ‘반공’이다.

물론, 국정교과서가 국가의 이념에 호응하는 작품을 선정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그것만으로는 비판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품 이면에 감추어진 식민성 혹은 제국주의의 기억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형식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의 잘 짜여진 장막 구조와 멜로드라마적 특성은 사실상 유치진이 친일연극을 창작하며 획득한 산물들이다.

또한 공격적이고 희생적인 애국을 강요하는 방식도 이른바 ‘총후문학’ 시절 정신대나 자살돌격대를 미화하고 총력투쟁을 종용한 친일문학의 언술방식과 묘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유치진의 <원술랑>은 청산되지 못한 식민의 기억과 공격적인 반공 이데올로기가 교직된, 다분히 정치적 함의를 가지는 작품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글을 쓴 김성현씨는 국어국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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