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산 한 우리네 현실은 한편으로 불황이라는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에 대해 내심 불안해하면서도 동시에 웰빙이라는 허울좋은(?) 가치에 온갖 시선을 다 돌리려 하고 있다. 사실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의 모토가 하등 나쁠 이유는 없다.

다만 언제나 그렇게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 좋은 가치들을 상품문화를 통해서만 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고 이를 갖가지 방법으로 상품화시키고 있는 문화의 전략에 그저 혀를 내둘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불황과 웰빙, 그렇게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맞물린 상황도 이제는 길들여질 때로 길들여졌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매우 낯선 만남이 아닌가.

이런 것들과 관련하여 흥미를 끄는 1956년대에 만들어진 리처드 해밀턴의 긴 제목을 가진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작품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작품의 제목이다.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갗 라는 질문과 아울러 작품에서 마치 그 대답이라도 하듯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았을 법한 텔레비전, 축음기, 세탁기 등의 첨단 가전 도구들과 모던한 인테리어가 다소 불안한 형태로 배치 되있다. 그리고 그 한복판위에 운동으로 다져진 다소 우스꽝스러운 건장한 보디빌더와 선정적인 포즈의 여성 모델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색다르고 멋있게 살기 위해서는 첨단 대중문화의 산물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고, 보디빌딩을 통해 건장한 몸을 만들어야 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뒤바뀐 여성이 가구처럼 존재하는 것 등이 이 작품에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직설적인 대답이라기 보다는 왠지 비꼬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데 그것은 우선 꼴라쥬로 구성된 배치가 엉성하고 불안한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고 이미지에서 오래낸 이미지들을 접합시킨 꼴라쥬 기법은 기본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접합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구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작품 역시 같은 방식을 통해 현실의 대중문화 이미지들을 차용함과 아울러 그 불안한 만남과 어긋난 구성을 통해 뭔가를 말할려는 듯 하다.

1956년 영국의 화이트 채플 화랑에서 열린 ‘이것이 내일이다’전의 메인 이미지로 사용되었던 이 작품은 영국 팝아트의 시발로 알려진 작품이다. 뒤샹의 제자이기도 했던 해밀턴 역시 역시 좁은 울타리의 미술이라는 개념을 다양한 대중문화의 시각적 이미지를 담아냄으로써 미술의 영역을 넓히려 했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광고 이미지를 꼴라쥬 형식을 통해 접합시킴으로써 그 효과를 증폭시키려 한 것이다.

물론 그가 의도한 것은 당시의 새로운 시각 문화에 대한 차용을 통해 미술의 영역을 넓히려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 대중 문화를 다시금 인식하게 한 것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어설프게 배치된 이미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한 현실성을 생각하게 한다.

팝아트가 가진 강점은 바로 이런 효과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 작품 역시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놓인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문화가 말하고 있는 잘 살아보기의 어려움과 위선 같은 것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문제는 아무나 그럴수 없다는 점인데 그 시절이랑 그렇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인지, 문득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이 글을 쓴 민병직씨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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