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원으로 시작했던 빚이 3200만원까지 치솟으면서 ‘돌려 막기’의 한계에 봉착한 회사원 장모씨(35). 두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고금리사채를 빌려 쓸 것이냐, 아니면 신용불량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냐.

헌데 눈이 번쩍 뜨이는 이메일 하나가 최근 날라왔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카드대출 비법을 공개한단다. ‘다 쓴 카드로 서비스 받기 비법 공개, 삼성 · LG카드 일시 증액 방법, 은행 거래 없이 1000만원 대출하기…’ 망설일 것도 없이 2주일간 이용대금으로 거금 2만2천원을 투자했다. 결과는 일단 대성공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모면한 장씨. 하지만 달라진 것은 시한부생명이 몇 개월 더 연장됐다는 것과 빚이 3200만원에서 4500만원으로 더 늘어났다는 것뿐이다. 

 그야말로 신용카드시대이다. 무분별한 현금서비스와 과다한 현금 수수료, 연체금리 등 후진적 카드문화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400만을 넘어섰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들은 이렇다할 대책 없이 빚 독촉 전화에 시달리며 고통 받고 있을 뿐이다. 당국에서는 이들에 대한 구제책을 제정하지 않은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구제책이 엄연히 존재한다. 개인워크아웃(신용회복위원회)과 배드 뱅크, 개인파산제도와 개인회생제도가 그것이다. 개인워크아웃은 2002년 10월부터 다중 신용불량자를 대상으로 채무재조정 지원을 하는 정책이다. 이 제도는 금융기관들의 자율적 협약으로써 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법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실질적인 채무자의 입장이 아닌 채권자의 입장만 반영한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 제도에 참여한 금융기관들이 적극적이지 못하고 떠맡기기 식의 입장을 보이고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다중 신용불량자를 대상으로 신용불량자들의 숨통을 열어주겠다는 의미로 장기분활상환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배드 뱅크가 또 하나의 정책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제도는 일정기간 연체되어 있고 연체량이 5천만원 미만의 다중 신용불량자를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 배드 뱅크는 개인워크아웃에 비해 대량적으로 신속하게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정책 또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제도는 정부가 사적 계약에 권력기관이 간섭한다는 오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하여 한시적 운영제도의 일환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그 자격 요건은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3월 10일 현재 1개월 이상 연체된 채무가 2개 이상의 금융기관에 있으며 그 중 1개 이상의 금융기관에 6개월 이상 연체가 있어야 하고 금융기관의 총 채무 원금 합계액이 5천만원 미만인 신용불량자들을 그 자격요건으로 한다.

 배드 뱅크의 가장 잔혹함은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를 막기 위한 방어벽을 쌓은 것이다. 배드 뱅크 적용을 받은 뒤 상환을 연체하면 다시 신용불량자로 등재되어 그 기록은 신용평가기관에 넘겨져 현행 신용불량 등재보다 더욱 가혹한 대우를 받게 된다. 신용불량자들의 인권은 바닥에 떨어져 짓밟히게 되는 것이다. 

 신용불량자 문제가 민간차원의 사적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처리한다. 개인파산제도와 개인회생제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법원에 의한 해결은 신용불량자들이 선뜻 선택하기 힘든 절차이다. 까다롭고 복잡한 법원의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법률적 조언이 절실한데 그들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없다. 또한 법원의 결정은 단순한 사적인 약속이 아닌 법적인 강제력을 동반한 약속이다. 신용불량자들은 그에 따른 책임이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만 한다. 

 수많은 정책이 있다 하더라도 채무자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지 않은 제도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종합적인 세무 상담기관이 부재하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면상의 깨알 같은 문자들이 아닌 실질적으로 채무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일일 것이다. 신용불량자의 위기를 맞기 전에 먼저 ‘찾아갈 수 있는’ 정책 기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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