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문제가 경제현안으로 드러날 때마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이구동성으로 속칭 신용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며 신용불량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왔다.

 사실 엘지카드가 부실경영으로 생긴 9조원 가량의 잠재부실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으로 떠넘기기 전에 모든 신용카드사의 부실에 대한 책임은 속칭 배 째라 신용불량자에게 전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엘지카드를 비롯한 신용카드사의 부실문제로 비롯된 감사원의 카드대란 관련 특별감사보고서도 카드대란의 원인을 소위 분수를 모르고 카드를 쓴 신용불량자들의 과소비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신용대란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신용불량자에게 일반적인 금융상식을 뒤집는 억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채권채무관계에서 대출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부자인 신용카드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용카드 부실 발급이 가능했던 직접적인 이유는 정부의 정책에 있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한답시고 금융기관이 신용능력 평가 없이 무차별적으로 카드를 발급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부실대출 폭증으로 금융혼란이 증후가 발생했을 때도 카드사의 잘못을 은폐했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 400만 - 경제 체제 위협

 실제로 카드사의 부실경영과 정부의 부실감독책임은 감사원보고서 조차도 2002년 5월,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보험료 남부예외자로 관리중인 184만 명에게 총 431만여 매의 신용카드를 발급했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정부와 일부 언론이 주장하듯이 마치 신용불량자들이 돈이 있는데도 갚지 않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채무자가 채권자를 속이고 재산을 은닉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금융기관들은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에게 인간적인 견디기 힘든 빚 독촉과 재산에 대한 가압류, 월급에 대한 가압류 등 법적 조치를 취하여 개인으로부터 빚을 받아낼 수 있고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 형사상 사기죄와 강제집행 면탈 죄로 엄중한 처벌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 400만 시대는 채무자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경제 전반의 소비위축, 사회불안 가중, 금융기관부실화로 연결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구조는 어디서 발생했을까.

이 악순환구조는 정부의 부실카드부양책과 이에 편승한 금융기관 대주주들의 부실경영으로부터 발생했다. 가계금융부채(신용불량자 등)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주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은행 등의 금융기관과 신용카드 회사들이 소매금융 확대전략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왔다는 것과 함께 정부와 국회가 각종 법과 제도 및 이자제한법 폐지 등 무분별한 규제완화조치를 통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방조 내지 조장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영역의 경우 정부와 채권금융기관의 귀책사유는 너무나 명백히 드러난다. 99년 강봉균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현 열린우리당 의원),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현 재정경제부 장관) 등에 의해 주도된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현금서비스 업무비중을 50%로 제한했던 규정의 폐지(99년 2월), 70만원이었던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99년 5월)] 등은  카드사들이 신용지급결제 수단이라 기능을 뒷전을 미룬 채, 연 30%대의 고금리를 노린 현금서비스 카드론 현금대출영업에 편중되도록 변질시켰다.
 
이와 함께 정부의 금융부실감독은 신용불량자 급증과 동시에 금융기관의 부실을 가져왔다. 지난해 4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나서 앞으로 신용카드사의 유동성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재경부는 큰소리를 쳤지만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가을, 엘지카드는 결국 부도 위기에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실패의 책임은 신용불량자들과 국민에게 전가되었다.

 카드 빚에 내몰려 어린 자식 셋을 끌어안고 13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는 30대 주부와  열다섯 꽃다운 어린 소녀가 앞날을 접고 어머니의 빚 부담을 못 이겨 자살을 택하고 20만 명의 국민이 빚에 쫓겨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 

 이러한 악순환을 방치할 경우 금융기관의 부실화는 심화될 것이며, 소비부진으로 인한 경기침체는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악순환 구조의 해소는 경제 활성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며 그 원칙은 공정한 책임의 분배를 확립하여 적극적인 채무조정을 통해 신용불량자들의 경제적 재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방지해야

 이를 위해서는 첫째, 법 제도적인 채무조정프로그램을 확립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추진된 개인워크아웃제도, 배드뱅크제도 등은 채권금융기관들에 의해 주도되는 채무조정제도로 채무조정의 주체의 공정성을 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380만 신용불량자들의 신용회복을 지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외국 예에서 보듯 법원이 채무조정의 주체가 되는 개인파산제와 개인회생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채무조정프로그램이 정비되어야 한다.

 둘째, 연30% 카드이자와 연 66% 사채이자 등의 고금리 횡포를 규제할 연25% 수준으로 제한하는 고금리제한법이 제정이 필요하다. 고금리는 채무자로 하여금 빚 상환 의지를 꺽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부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셋째, 미성년자 저소득층 등 채권자와 정부의 명백한 귀책사유 등에 의해 채무변제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과 이들의 채무를 탕감하기 위한 "신용불량자중 미성년자 저소득층 등의 연체채권 매입 및 채무탕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이들의 신용회복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임동현씨는  민주노동당에서 경제민주화운동본부 국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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