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부모는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고, 자식은 부모를 신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는 부모에 대한 증오를 쌓아갈 수밖에 없다.

부모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국립대 3학년 B씨(21). 1년반 전에 집을 나와 학비와 생활비 전부를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 집을 나온 이유는 가족들이 B시가 다니고 있는 종교단체에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구타까지 당해야 했다. 신자가 아니었던 아버지가 편을 들어주리라 기대했지만 모른척 할 뿐이었다.

평상시는 사이좋은 가정상을 추구하면서도 무슨 일만 있으면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목소리는 물론 기침소리조차 듣기 싫어 자기 방에서 문을 잠그고 귀마개를 틀어막는 생활을 계속했다.

"저에게는 혼자생활이 이상적이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족과 사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병으로 쓰러져도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가족이라는 유대관계는 이미 정적으로는 끊어졌습니다. 단지 사회적으로 예를 들어 호적상에는 가족으로 관리되고 있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집을 구하면서 계약할 때, 장학금 신청시 아버지의 직업을 쓰거나 인감이 필요할 때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은 '사무적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사립대 4학년 C씨(24)는 4년 전에 부모와 호적을 분리했다. 자기의 호적상에 가족이 한명도 없게된 지금, 마음한편에서는 기쁨이 솟아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스파르타식 가정교육을 받았다. 산속에 있던 집에서 도보로 50분 걸리는 보육원을 다녔다. 같은 방향에 부모들의 직장이 있었는데도 한번도 그녀를 자동차로 데려다준 적이 없다. 가끔 친구 부모의 차를 타고 돌아오는 날이면 "다른 사람에게 폐끼치지 말라"는 꾸중을 들어야 했다. 울면서 저녁을 먹었고, 공작시간에 지점토로 만든 조형물은 부부싸움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성적은 좋았으나 사촌과 비교해 혼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부모에 대한 환멸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때는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였다.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사립학교를 희망했다. 공부에 관해서만은 부모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부모들은 보수저인 친척들의 잔소리에 손을 들어줘 그녀를 갂운 현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때는 인생을 포기했습니다."라고 그녀는 몇 번이나 말했다. 도쿄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이래 한번도 집에 돌아간 적이 없다.

도쿄 가쿠게이대학 '야마다마사 히로'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중산층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넉넉해진다'라는 가족공통의 목표는 없어지고 만다. 가족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빈곤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빈곤에서 탈출해도 가족관계는 여전히 나아질 기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은 가족사이에 실질적인 애정이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족의 실상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갈등이 쌓이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부모와 자식관계를 찾으려고 발버등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겨우 도달한 답은 미련없이 부모와 자식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중순에는 '일본에서 제일 미운 부모에게'(메디아워크스 발행)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부모에 대한 원망이 담긴 편지 1백여편이 소개되었다.

"귀찮게 하지말고 죽어주세요. 그것이 당신에게 드리는 부탁이예요."(38세 여성), "지금 저는 정신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돌아가셔서 감사합니다."(33세 남성)등 증오의 깊이는 너무나 깊다. 이 책의 편집자 하라주쿠 카운셀링센타 '노부다사요코'씨는 "가족은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라고 과감히 말하고 있다.

문제는 가족의 모습이 고정되는 것이다. 이미 '미운부모'를 갖게 돼버린 젊은 세대에게 가족은 가족공동체가 아닌 가족해산에 더 가깝다. 더욱 무서운 것은 가족이라는 밀실에서 소용돌이치는 부모와 자식사이의 증오가 외부와의 접촉없이 그대로 세대간에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이 아이를 길러내는 최적의 장소가 되기 위해선 그곳에 아이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의 존엄성을 인정할 수 있는 토양이 있어야 할 것이다.

'Asahi Shimbun Weekly AERA'
3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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