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서울’은 모든 분야의 구심점이다. 문화부문 역시 과도하리만큼
중앙에 집중되어 있기에 지역의 자생적인 문화는 점점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인식아래 각종 지역문화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지역문화를 정책적 지도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중앙정부의 태도와 지방정부 나름의 문화정책부재로 실효
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에 문화부에서는 지방화 시대에 걸맞게 문화자치를 통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
을 이룰 수 있도록 지역문화의 재정립을 위해 이번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지역문화 개념의 재정립
(2) 지역문화운동, 어디까지 갔는가
(3) 지역문화운동의 현장 ‘태백시’


봉건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발전’에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의
이행’, ‘민주주의 혁명’이 있었다.
인간의 물리적 힘은 늘어났고, 물질생활도 풍부해졌다. 그러나 이 20세기의
백년 사이에 인류는 두차례나 세계대전을 치루었고, 그 이후 냉전체제 아래서
갈등을 겪었다(물론 우리는 그보다 더 처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루었다).

물리적 힘이 커진만큼 파괴력도 커졌고, 세계를 장악하려는 패권의식이 더욱
부풀어 올랐던 결과였다.

이제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세계를 하나의 경제권 속에 묶어 나가려는 힘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공식 출범한 1995년은 이러한
‘세계화의 원년’이라고도 한다. 그 힘의 중심부의 관점에서 본다면 세계는
더욱 살기좋은 곳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가져온 발전의 ‘능률’은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
같지만 그에 따른 비효율도 만만치 않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을 놓아두고 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해 영어를 배워야 한다.

오랫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아온 나라들은 이미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났던 끊임없는 문화적 갈등, 혹은
물리적 충돌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그럼에도 아직도 대개의 나라에서는 자기
고유의 언어를 유지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위와 같은 ‘세계화’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서 ‘지역주의’ 또는 ‘지역화’
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는 ‘세계화’의 중심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외지역인 ‘주변부’에 대한 개념도 있다.

또 이 개념을 조금 확대하자면 지리적 위치로서의 변방뿐만 아니라 중심에서
소외된 ‘계층’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다.

한편 ‘세계화’에 반대하는 ‘지역화’의 관점은 세계화에 따른 획일화에
대한 거부이다. 전체에 대한 개인의 개성(자주성)과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산업화와 함께 ‘발전’한 민주주의의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화는 세계화에 따른 몰개성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세계화를 주장하는 중심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게(물론 세계화라는 틀
속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철저한 지역주의의 관점에 서더라도 세계화의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양쪽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데 현재의 과학기술
혁명이 다음 세기에는 이를 가능하게끔 해야 한다고 본다(물론 세계화만 더욱
강고하게 펼쳐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에 강한 의지형의 문장을 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요즘의 인터넷은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직 시기상조인 듯 해도 실용화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지역화를 덧붙인다면 영어를 모르고도 인터넷의 내용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어야 하고(현재의 번역기 수준으로는 어렵지만 머지않아 가능해 질 것
이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보화를 통하여 각기 분산되어 있는
지역문화들이 서로 그물코와 같은 연계를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한다.


산업혁명이 세계화된 자본주의와 산업사회를 발전시켰다면 반도체와 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한 21세기 사회는 세계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앞절에서 세계화와 지역화의 연계를 거창하게 그려보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지역문화’라고 했을 땐 대개 자치단위로서의 문화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지방도시의 문화는 어김없이 서울의 문화를 모방하고 있으며, 서울의
문화는 세계주의의 문화를 답습하고서 지역문화의 특성을 찾는다는 것은 어떤
지향점을 가진 새로운 문화를 재창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심부로의 집중(획일화, 표준화)이라는 세계자본시장의 요구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지역화(다원화), 그 긴장 속에 우리의 지역문화활동이 놓여
있다. 미래의 삶과 문화가 전지구화되리라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여기에 덧붙여서 개인과 개별지역의 자기 특성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다원(지역)적 삶과 문화가 보장되는 지구촌에 대한 기대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세계화의 보편주의에 대한 거부이다.
이미 대중매체문화의 비주류계열에서도 “촌스러운 것이 아름답다” 식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들의 구호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세계문화의 모방이라는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적 행태만의 모방이 아니라 지역적(계층별) 삶의 역사와 문화가 다름
으로해서 생겨나는 자기 개성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문화 소모임 활동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다. 중앙정부 또는 지방자치
단체 차원에서 문화정책의 변화가 실질적인 여가시간과 활동공간(문화센터)의
보장등으로 가시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간의 일방적인 전파
구조를 통해 이익을 누려온 문화권력과 이해관계가 얽히게 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예고하기
도 한다.

한편 이러한 지역화와 다원화를 주장하면서도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 환경을
주장하게 되면 또다른 획일화가 되므로(생태계와 같은) 문화의 상호관련성과
순환구조를 고려한 그물코와 같은 연대틀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현재의 문화적 소외 상황에 대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
적인 변화를 이루어 내야 할 것이다.

박인배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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