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정일에게서 우리는 육군대위의 모습으로 군림하던 아버지를 읽는다.

그런 아버지의 때이른 죽음은 그를 해방시켜 주었지만, 동시에 현실로 가는
길까지 봉쇄해 버린다. 그는 빈집(The Empty House)에 이르러, 공포에 질린 채
, 문고판 속에 머리를 쳐박는다. 이렇게 해서 책읽기가 세상을,

삶을 대체해버리는 것, 하지만 실상 그가 이르는 곳은 이상(李箱)도, 뭉크도
아니고, 다만 그 몸짓일 뿐이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그는 언젠가 스스로 그려보였던 계보, 김춘수에서 시작되는 일련의
상상력 속에 놓여있는 작가이자 그것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이탈점이라 할만
하다.

그것의 현실적 거점은 대구를 중심으로 한 곳, 더 익숙한 말로 오래도록 TK라
불리었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 지역 속의 소수집단으로서 그들이 지닌,
정치권력에 대한 혐오는 현실세계에 대한 환멸을 통해 가공(架空)의 세계로의
도피를 낳는다.

(“대저, 내가 경험했다는 것 또는 직접 보았다는 것들은 모두 거짓말이고 믿
을 수 없다.…그런 것들은 유치하고 역겹다. 게다가 모든 권력과 독재는 리얼
리즘에서 나온다.” ‘아담이 눈 뜰때’)

그의 소설 속 사람들에겐 들끊는 욕망과 허무함만이 존재할 뿐 그 계급적
차이라든가, 사회적, 물질적 입장은 쉽게 무화된다. 그들은 거리에서 만나
무갈등하게 옷을 벗어내고 서로 뒤엉킨다. 그들은 한낱 환영같은 존재이기에
국적이 없으며 그들의 대화는 개별적 존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배분된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그것은 깊이를 지니지도, 삶의 애매한 그늘을 드리우지도 않는다.
그것은 세상의 실크커튼 저편으로 재즈처럼 암울하게 흘러갈 뿐이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
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
이었다”라는 말처럼 그는 80년대를 다만 상상의 몸짓으로 지나친다.

그는 반항하되, 그것의 근원으로서 현실이 드러나는 적은 없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은 물렁물렁한 것을, 육체를, 성기와 똥구멍을 지나, 한 무더기의
똥에 이르러서도 제 갈 길을 찾지 못한다. 현실이 지닌 파시즘적인 속도에
대한 불안도, 그것에 대한 그의 저항도 무력해진다.

그는 그저 아담이 눈을 뜬 이후 인류에게 주어진 앎에의 충동(Libido
Sciendi)을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욕망으로서의 그녀는 말한다.

“당신은 작가예요. 당신은 아마존의 자연림이 모두 쓰러질 때까지, 시베
리아의 삼나무 숲이 모두 종이가 될 때까지 쓰고 또 써야만 해요.” 그리고
이 모든 풍경들의 저편에 그가 그토록 저주했던 자본-아비가 오연히 서있는
것은 아닌가. 세계의 종말이….

그런데 뜻밖의 희극적인 사건이 그를 구해낸다. 그의 소설을 혁명적인 것으로
오인한 눈 먼 권력이 그를 구금함으로써 그의 소설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96년에 금지된 그의 소설은 비전(秘傳)이 되어 버렸다. 몇몇의 똑똑한 대학생
들은 80년대에 맑스를 읽듯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그의 소설은 애초에 그가 꿈꾸었던 반역성을 상실한 채 비역질의
대상으로 변해 버린다.

그의 숨은 혁명은 묵살되고 독자들은 호박씨를 까먹듯이 그의 소설 속에서 화
장실 벽의 낙서만을 읽어버린다.

그 떠들썩했던 88년에 그가 탕진된 듯이 시를 떠나 맨처음 쓴 소설은 꿈을
받아적은 것이라 밝힌 바 있는 ‘펠리칸’(문예중앙 봄호)이라는 단편이다.

우연히 자신의 집에 날아든 더럽고 추한 새 펠리칸을 쫓아내기 위해 발길질을
하던 사내가 사형에 처해진다는 이야기이다. 알레고리의 ‘고리’는 너무도
강렬해서 우리에겐 해석의 자유가 없다.

작가는 소설 속의 펠리칸이 사랑도 되고 미움도 되며 육법 혹은 민중이나
혁명 같은 것으로 수시로 얼굴을 뒤바꾸며 나오는 은유며 상징이라고 밝혀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그가, 또는 90년대가 응시하는 현실이
아닌가.

수없이 많은 길들이 얽혀 미로를 만들고 그래서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으로 변한다. 놀랍게도 꿈의 심연이 마치 연꽃처럼 피워올린 이 소설의
서두는 이후 장정일 소설이 처할 운명까지를 고스란히 비추어 보여준다.

“나는 철장에 밖으로 나는 새 본다. 이제 곧 나는 죽으려는데 너는 푸른
하늘 아래를 날아가는가.”

손종업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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