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이 의기의식을 느끼는 것일까.

최근 재벌회장들이 잇달아 자신들의 개혁성과를 홍보하는 책들을 쏟아 붓고
있다.
‘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세계가 열린다. 미래가
보인다’ ‘이 땅에 태어나서:나의 살아 온 이야기’.

지난해 11월 20일 발행된 ‘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동아일보에 연재해 온 내용을 엮은 책으로, ‘21세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해 주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와관련, 97년 12월 7일자 신문에 ‘에세이 발간 이건희 삼성
회장 인터뷰’ 기사를 대문짝하게 보도했고, 그 후 이 책은 IMF 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칭송되었다.

뿐만 아니라 IMF 사태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재벌회장을 구원자로 둔갑
시켜 놓고 말았다.

이 책에는 ‘내가 만나 본 이건희 회장’이라는 제목으로 이어령(이대 석학
교수), 박경리(작가), 송자(명지대 총장), 홍사덕 의원, 후안 안토니오 사마
란치 위원장 등이 이 회장에 대한 평을 하고 있는데 모두가 찬사일변도다.

소설가 이호철씨는 당시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 우리 경제의 위급상황
속에서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 하는 데 있어서도 이 한 권의
에세이는 매우 시의 적절해 보인다”라고 평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에 대한 찬사일변도의 평가가 계속되는 동안 지난 3월 5일에는
김우중 회장의 경영전략을 다룬 ‘세계가 열린다. 미래가 보인다’가 출판
되었다.

기업경영전략과 산업정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경제·경영분야 교수 9명이
대우의 세계경영을 심도 깊게 고찰하면서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대우의 세계경영이 적절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물론 오늘날 대우의 세계경영이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평가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대우의 경영전략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인 양 떠들어 댐으로써 재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정주영 명예회장의 ‘이 땅에 태어나서:나의 살아 온
이야기’는 현대의 업적을 주로 소개하고 있는 책인데, 다른 두 권의 책과
다르게 이 책은 오늘날 재벌들에게 가해지는 비난에 대한 못마땅함을 노골적
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그 동안 우리 기업들은 물불 안 가리고 일해서 막대한
외화도 벌어들였으며 인재양성도 했다. 그렇게 일해서 우리가 이 만큼 자립
하고 성장 발전할 수 있게 한 기업의 공에 대해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항변
하고 있다.

이처럼 재벌회장들은 오늘날 재벌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을 무마시키기 위해
엄청난 공세를 해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초래한 위기상황에 대한 반성은 커녕, 그들을 겨냥한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경영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것도 아니면 노골적으로 못마땅함을 털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는 ‘인물과 사상 6권’에서 “재벌
회장 관련 저서들이 잇달아 나오고 공세가 벌어지는게 꼭 우연인 것 같지만은
않아 영 씁씁하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재벌회장 관련 저서들의 출판은
재벌개혁론에 대한 재벌들의 부드러운 반격은 아닐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말도 있듯이, 비록 위기에
처한 재벌이라 하지만 그들의 아성은 여간해서는 무너질 것 같지 않다.

<김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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