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직업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표정들이 굳어 있다는 소릴 들을 땐 씁쓸하더군."

생기 발랄하고 순수함에 가득 찬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표정을 비교한다는 건 무리이다. 항상 야간근무에 시달리고, 두 사람 이상의 몫을 해야하는 그들의 생활은 야박한 박봉에도 경찰이라는 이유로 철인이 되어야 한다.

양재봉 경사는 우연찮게 들어선 이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내가 그랬지. 그 친구랑 같이 경찰시험을 봤는데 그 친군 지금 장사하고 난 경찰제복을 입고 있네"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거칠고 뭉툭한 손으로 순찰일지를 빽빽히 정리하는 모습에서는 그의 19년간의 충실함을 엿볼 수 있다.

"흑석동 사람들이 다들 그래. 서로 미워 할 줄 아나, 해코지 할 줄 아나, 평온한 동네인 것 같아"라고 말하는 정호연 소장은 시끄럽고 서로 얼굴 붉히는 사건·사고보다는 길을 잃어버린 할머니들의 방문과 주민들의 민원처리가 주 업무라며 흑석동의 순한 민심을 은근히 자랑삼아 얘기한다.

흑석2동 파출소 노총각 그룹의 회장격인 이재섭 순경은 "우리 같은 사람은 술도 제대로 못 마셔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직업이니까요"라며 결혼에 관해서는 여자친구 사귈 시간이 없어 못 한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의 변명 아닌 변명이 애처롭기만 하다. 첫사위처럼 믿음직한 체격에 김동규 순경은 요즘 순찰을 돌 때면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고 한다. "한두 시쯤 한강철교 밑에 있는 자전거 도로를 순찰할 때면 명예퇴직을 당한 사람들이 술 한잔 걸치고 한강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여요. 보는 사람도 속상한 데 당사자는 오죽하겠나 싶어 발길 돌리기가 쉽지 않아요." 김순경은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도와줘야 하는 경찰이지만 그런 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해 쓸쓸함만 남는다고 한다.

파출소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식당 아줌마는 파출소 내에 건조하기 쉬운 분위기를 아기자기하게 웃음으로 바꾸는 홍일점이다. "박경장이 무뚝뚝하다고? 사람이야 박경장만한 사람이 없지. 잔정 많지, 순하디 순하지. 하루 보고는 몰라"라며 아무 표정 없이 묵묵하게 일만 하는 박경장을 두둔해주는 모습은 정겹기 그지없다.

저녁밥상에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숟가락 드는 게 행복이라는 이들. 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관심이 없는 듯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흑석2동 파출소 사람들은 있는 듯 없는 듯 항상 우리 주위에서 마음을 열고 주의 깊게 맴돈다. 그네들의 행복보다는 우리들의 행복을 돌봐주고 있음에 마음깊이 격려의 한마디 따스하게 전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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