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으로 양심수문제는 종지부를 찍는 듯 했다. 3·1절을 기해 양심수 전원 석방을 이루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약속을 믿었고 그 약속이 연기될 때도 김대통령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13일 단행된 사면조치에 더 이상의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건국이래 최대 규모의 사면이라고 합니다. 5백50명의 사면이 이뤄졌고 더 이상의 장기수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4백78명 전체 양심수중 74명의 양심수만이 석방됐을 뿐입니다. 대표적 양심수라 하는 박노해, 백태웅씨는 석방되지 못했으며 아직도 감옥에는 17명의 장기수가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사면된 장기수중 최화정, 김인수씨는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갱생보호소로 이송되었습니다. 제2의 감옥인 그 곳에서 또 다른 감시를 받게된 것입니다. 이는 기만적 사면조치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면을 규탄합니다. 그리고 양심수 전원 석방을 촉구합니다."

89년 방북 사건으로 구속, 92년 석방된 임수경씨의 말로 시작된 사면조치 규탄 집회가 13일,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민주화 실천 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와 천주교 인권 위원회의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참여한 집회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으로 이어졌다.

85년 구미 유학생 사건으로 구속된 조순현씨는 "간첩이란 어처구니없는 죄로 아들이 구속된지 14년째입니다. 김대중씨 당선으로 아들의 석방을 굳게 믿고 있었는데...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입니다. 이런 어머니들 마음을 알고 있는지...하루빨리 석방되기만을 바랄뿐입니다"라며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황인호, 황인욱 두 형제가 감옥에 있는 전재순 어머니 역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라며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격앙된 감정을 나타냈다. 아들이 구속될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전어머니는 울먹거리는 모습으로 성명서를 낭독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들의 울음 섞인 연설에도 불구, 동참한 시민의 수는 10명도 채되지 않았다. 어머니들의 모습을 안스러워 하는 사람, 이번 조치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잠깐의 관심만을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 비난의 목소리는 결코 사그러들지 않았다.

사면조치에 대한 규탄과 양심수 전원 석방 촉구 내용으로 이뤄진 성명서 낭독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현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배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유린한 전두환·노태우는 겨우 2년만에 석방됐습니다. 석방된 그들에게서 반성과 사죄의 기미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 의해 억울하게 구속된 수많은 양심수들은 자신의 신념과 과거행적에 대한 반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금된 그대로입니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의 타파, 또한 진정한 국민 대화합을 위해선 진정한 사면을 이루는 것이 급선무입니다"라는 임수경씨의 주장은 그 뿐이 아닌 전 양심수와 그 가족들의 바램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