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명사가 관형형으로 연결될 때 앞 명사에 관형격 조사'-의'를 붙이는데, 이 '-의' 앞에 다른 조사가 와서 복합조사를 이루는 경우를 두고 이것이 우리말 표현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쓰지 않아야 한다는 논란이 있다. '-에서의, -로서의, -와의, -으로의, 부터의....'등과 같은 것들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1) 미국에서의 도피행각 2)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3) 저자와의 대화 4)기독교 사상으로의 전이 5) 친구로부터의 편지

이런 것들은 일본어의 '헤노' '토노'와 같은 말에서 온 것이므로 써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이러한 표현들이 일본어로부터 왔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고, 둘째는 설령 일본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우리말의 구조를 무시하는 표현이 아니므로 편의상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관형격조사 '-의'는 신라시대부터 ' '라는 한자의 음을 빌려 사용하였고, 조사의 복잡현상은 현대국어에 와서 두드러졌다.

이러한 논란은 사실 경직된 국어문법 때문이라고 본다. 동사의 의미를 지닌 한자의 동명성을 부여하여 영어의 동명사처럼 썼다면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나 '처리', '견인'과 같이 의미상으로는 명백히 동사성인 것들도 모두 명사로만 처리하여 어쩔 수 없이 이러한 구조를 낳고 만 것이다. 즉 부사어는 명사를 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뒤에 반드시 '-의'를 붙이도록 만들 수밖에 없게 하였다.

위의 것들에서 '미국에서 도피 행각,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저자와의 대화, 기도교 사상으로 전이, 친구로부터 편지'처럼 쓰면 문법적으로 틀리고, 궅이 이렇게 쓸려면 뒤에 명사형을 다 동사형을 만들어 '도피하다, 책임지다, 책임지다, 대화하다, 저이하다, 오다'로 해야한다. 부드럽게 쓸 수 있는말을 문법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현행 문법에 따르면 1)-5)의 예들처럼 써야 하는데, 이처럼 '조사+'의 형식이 많이 늘어난 이유는 현대에 와서 표제식 표현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만일 일본어에서 들어 온 표현이라면 일제 이후 계속적으로 이러한 표현들이 나타났어야 하는데, 이러한 표현들이 최근에 들어와서야 빈번하게 쓰이고 있어 언어의 상호 영향관계가 분명치 않다. 설령 누군가가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여 이러한 표현들이 일본어에서 들어 왔다고 한다면, 삼국시대부터 우리말이 일본어에 영향을 미쳤고, 이것이 다시 돌아 우리말에 영향을 미쳤으니 결국 필요성에 의해 우리말의 구조가 다시 복원하는 셈이라고도 강변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짧은 표제식 표현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현실을 볼 때, 위의 문장들을 서술식으로 고쳐쓰라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라는 점이다. '저자와의 대화'라는 방송 제목을 '저자와 대화하기'로 고치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이 둘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만 '과거 고시 합격은 출세에서 길이었다'나 '독일인들은 집시들이 독일로 이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로 고쳐써야 한다.

언어 사용의 잘잘못을 따질 때는 전체 언어의 틀을 고려해서 허용범위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때도 언어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그 표준이란 언중들의 언어생활과 별개의 것이 되고 만다. 언어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이것은 의사 소통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얼마든지 허용 가능하다. 언어를 규정짓는 데에도 변호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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