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60년대 역사 시기 구분 논쟁을 통해 1926년 김일성의 '타도 제국주의 동맹'결성에서부터 초기 공산주의 운동의 대중을 떠난 교조주의, 분파주의, 사대주의를 극복한 참민족해방운동이 시작되었으므로 이 시점을 현대사의 기점으로 설정하였다. 그렇다면 이때 현대적이라 할 수 있는 사진이 존재하는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타도제국주의동맹으로 시작되는 항일무장투쟁을 형상화한 사진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김일성과 항일유격대원들의 기념사진등이 주조를 이룬다. 모든 것이 수령 중심으로 되어있는 북한사회에서 수령이 사진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북한 사진은 크게 주체적 사진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사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의 경계는 단순히 당정책의 선전수단이냐, 아니면 이민이 자주적 주체로 나서게 하는 인간학으로서의 예술사진이냐로 구분지을 수 있다. 북에서 얘기하는 '주체적 사진'은 수령인 김일성의 배려 속에 살아가는 인민의 생활모습을 찍고 인민의 생활에 복무하는 사진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북한의 작품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볼 때 우선 해방직후부터 6·25전쟁 전까지의 시기를 살펴보면 보통 강 개수 공사의 첫삽을 뜨는 김일성의 사진을 비롯하여 토지개혁 등 반제 반봉건 혁명을 수행하며 현지지도하는 사진 등이 있다. 이후 전쟁 시기에는 많은 종군 기자들이 투여되어 전쟁 기록에 대한 많은 사진을 남기고 있다. 특히 남한의 북침설을 주장하는 증거 사진들이 선전적 목적으로 일관되게 제시됨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의 전면적 건설기인 1961년부터 1970년을 보면 사회주의 제도하에서의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 모습이 사진마다에 잘 반영되도록 했다.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위한 투쟁시기인 1970년부터 1980년대 전반기까지는 김정일이 문예정책지도의 전면에 나서서 영화예술론, 종자론, 속도전과 같은 개념을 만들어내고 영화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지도한 시기이다. 1980년대 후반기부터 현재까지는 속도전의 개념이 도입되어 북한 예술의 정체상황을 극복하고 세계적 수주의 예술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적극적인 정책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북한 문화 조직기구의 하나인 조선사진가동맹(이하 사맹)은 1946년 10월 창설된 '북조선사진가동맹'으로 발족하였다. 그후 1953년 9월 '문예총'의 해산으로 일단 해체되었다가 1961년 1월 22일 '조선사진가동맹'으로 다시 발족하여 같은 해 3월 2일 창립된 '조선문예총'산하 단체로 망라되었다.

'사맹'의 임무와 기능은 당의 노선과 정책, 특히 사진분야의 시책을 사진가들 속에 침투시켜 그 관철을 위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도록 동원하는 것이며 사진가들 속에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를 확립하고 사진가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강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북한은 사진이 직관선전에 매우 효과가 크다고 평가하고 사진분야에 큰 관심을 돌리고 있다. 사진분야도 순수사진 작품의 창작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사진 제작이다.

김부자의 사진은 기관, 단체의 건물 내외는 물론 각 가정에 이르기까지 걸어야하기 때문에 연간 수십만개의 복사 작품들이 만들어진다. 또한 김부자의 활동을 찍은 사진들은 화보의 사보, 잡지들에 게재해야 하므로 정성들여 찍도록 지도 통제하고 있으며 일단 사진 원본이 나오면 정무원 출판총국 검열부의 검열을 받아서 싣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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