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내다보는 이 시점에서 학RP에서는 21세기를 위한 준비들로 분주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술기획면에서 '대안모색'이라는 화두에 초점을 맞춰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인식전화', '지식인 문제', '과학기술의 새로운 논의를 위하여' 3개의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호부터는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인식전환'을 주제로 4회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작년 말 우리 신문들은 1997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세계 10대 뉴스로 체세포 복제양 돌리와 패스파인더 화성 안착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성공이 세계 10대 뉴스 반열에 등극하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여 가슴 뿌듯하기는커녕 불안감이 무게를 더한다.

물론 10대 뉴스에 끼지는 못했지만 듣는 이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소식도 있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정자수 감소에 관한 보도가 그것이다. 정액 1ml에 2천만마리 이상이어야 임신이 가능한데 1938년 1억1천백만마리로 줄었고 앞으로 70~80년이 지나면 대부분의 남성 생식능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과학자들의 경고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런 보도가 나간지 얼마되지 않아 '불임 남성들에게 희소식'이라는 큼지막한 특집이 한 일간지 지면을 장식했다. 정자 한 마리만 있어도 미세주입법으로 얼마든지 수정가능하다는 국내 한 병원의 주장을 사회와 함께 자세히 소개한 뉴스는 과학기술이면 불가능한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환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는데 이바지했을 것이다.

작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기후변화 제3차 당사국총회가 있었다. NGO들의 열띤 토론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 사용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저지하겠다고 모인 세계 1백60여 국가의 책임있는 5천여 당국자들의 회의 결과는 지구 온난화방지에 크게 미흡했다는 여론이다. 정부의 환경의식이 결코 시민을 따르지 못한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기후변화문제로 냄비신문이 달아오르자 핵발전 옹호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민주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그들만의 논리로 이산화탄소 배출하지 않는 값싼 에너지임을 강조하고 광고방송 배경음악으로 애국가를 채용하여 핵이 애국인양 홍보하지만, 현 세대의 에너지 낭비대가로 받을 우리 후손 수천세대 이상의 핵폐기물 고통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조차 없었다.

관심있는 시민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한 가운데 공급자 위주의 계획으로 추진되는 핵발전소의 정책에 이의를 달고자 한다면 "당신이 핵에 대해 무얼 아느냐", "과학기술에 맡기라"는 항변을 한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이 미래를 담보하는가.

정자수 감소원인은 무엇일까. 농약 살충제 등의 화학물질 범람과 물질문명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가장 큰 혐의를 둔다. 그 밖에 유기용제에 중독된 근로자에게서 무정자증이 나타나고 중금속 방사능 전자파가 남성불임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물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탐닉하는 술과 담배도 불임의 원인이다. 이쯤되면 앞으로 모든 남성에게 불임은 어쩌면 필수 권장사항일지도 모르겠다.

남성불임으로 세계인구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블랙코미디는 인류의 생존을 우려하는 목소리 앞에서 쓴 웃음도 유발시킬 수만도 없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마무리되면 인간은 양질의 유전자 양산체제를 구축하려 들것이고,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치환하는 과학기술의 찬란한 승리는 유행을 선도할 우생학적 인간상을 한껏 펼쳐 보일텐데, 인류의 그까짓 정자수는 고려대상에 전혀 포함되지 못할 것이다.

일견 대성공으로 나타난 녹색혁명은 지구촌의 인구와 식량문제를 동시 해결하리라 확신하게 해 주었고,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오랜 농업방식을 일거에 폐기하고 주어진 설계도에 따라 서둘러 획일화 시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식량증산은 인구를 더욱 폭발시켰고 농약에 중독된 땅이 황폐되자 화학비료를 마구 뿌려도 증산은커녕 현상유지도 어렵게 되었다.

유전공학은 이 시점에서 제2의 녹색혁명이라는 장미빛 미래를 펼치려 하지만 과연 안전이 가능할까. 현재의 과학기술은 광우병이나 0-157대장균에도 쩔쩔매는 상황이다. 음식이나 약품 그리고 피부접촉과 공기를 통해 체내로 들어온 조작된 유전자가 우리 몸에서 무한 증식하여 에볼라바이러스처럼 치명으로 창궐할 때 과학기술이 이러한 것들로부터 구제해 줄 수 있을까.

과학기술. 특히 애국가마저 볼모로 잡는 오만한 핵기술 옹호론자들은 이세대의 흥청망청만을 지상의 과제로 삼은 모양이다. 독선적인 과학기술로 해결이 난망한 핵폐기물 문제를 후손에게 떠넘기려는 '세대이기주의적'배려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이라는 GNP 잣대는 같은 맥락의 ppm의 잣대로 환경의 질을 평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주의자들은 세계화에 낙오되지 않으려면 과학기술에 투자에 이어 개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더렵혀진 외피도 ppm을 만족시키는 과학기술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렇게 하면 환경문제는 말끔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환경문제는 과학기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환경문제는 생태질서로 해결해야 한다. 환경문제의 본질을 후손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려는 과학기술은 전혀 대안일 수 없다. 후손의 기준으로 생태적으로 접근할 때 비로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 볼모 인생에 생태질서를 한꺼번에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다. 사회가 이미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속가능한 생태 사회로 전환해 가는 과정에 과학기술을 한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단적으로 생태질서를 회복하기 앞서 반환경적 과학기술로 뒤얽힌 고질적 환경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데 과학기술을 이용할 임시방안을 민주적으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과학기술이 될 수 없다. 시민참여를 봉쇄한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과학기술은 아무리 찬란한 장미빛으로 홍보한다하더라도 전혀 후손의 환경을 담보하지 못한다. 생태적이지 않다. 생태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최근의 독선적 과학기술은 민주적 논의의 과정을 거쳐 당장 폐기해야 한다. 곧 노후를 맞아 지금의 인간은 물론 사랑하는 자식을 포함한 후손도 생명이요, 생태계의 산물인 생명은 생태계 내에서 건강해야 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개발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만큼 생태계 파괴가 극에 달하는 이때 민주적 논의의 장을 넓혀 참여를 확대한다면 생태사회의 새로운 전기는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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