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경제위기가 가속화되는 시점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은 그 숫자를 더해나가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이 30에서 50대의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 충격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IMF 한파 이후 불어닥친 경기침체와 불황은 심각한 고용불안을 야기했고 이에 따른 '중년층 자살'은 이제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IMF형 자살'이라는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아서 불안하기만 하다.
지난달 13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철회 결정이 통보되던 날 대우조선의 최대림씨(42)가 분신, 자살했다.
'이번 노사정위원회 합의내용 중에는 기업의 양도, 합병, 인수까지 포함한 정리해고 조항이 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정말 큰 일입니다. 이 땅에 정직한 기업인은 얼마 없습니다. 악용하여 얼마나 괴롭힐지 상상해 보십시오. 또 근로자파견법을 만들면 임금은 대폭 줄고 근로 조건은 악화되어 근로자만 죽어 가는 꼴이 됩니다.'
최대림씨가 분신직전에 뿌린 유서의 한 대목이다. 당연히 최씨는 현실의 노동조건 개설을 위해 몸을 던진 '선지자'였으며 전국의 노동자들은 물론, 총파업 철회를 결정한 민주노총 대의원들에게 이는 가슴아픈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최씨의 집에서 또 다른 유언장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회사측은 '또 다른 유서'내용을 문제삼으며 최씨의 분신을 보상금을 노린 '의도적 자살'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지난 95년 대우조선은 박상원씨의 분신에 대해 '도외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퇴직금과 별도로 보상금 2억 1천만 원을 지급한 바 있다. 이번의 분신은 바로 이 보상금이 이유가 아니겠냐는 것이 회사측의 추측이다. 결국 최씨의 시신은 그 자살의도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0여 일이나 지나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을 보며 한가지 의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최씨가 보상금을 이유로 분신을 했다손 치더라도 과연 그의 죽음이 평가 절하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씨의 분신이 '선지자적 죽음'이든 그렇지 않던 간에 한가지 확신할 수 잇는 것은 그의 죽음이 IMF구조조정 이후, 한국 노동자들의 상황을 대변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일용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조차도 심각한 고용불안과 생활고에 시달려 한번쯤은 자살을 꿈꾸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고 진실이라는 점이다.
불과 며칠전, 지난 4일에 또 한 명의 노동자가 고용불안에 시달리다 결국 분신의 길을 택했으며 5일에는 창원공단의 노동자가 목을 메어 자살했다.
매일매일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보상금을 위해(?), 혹은 진정한 '노동해방'을 위해, 아니면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사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