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행하는 '문학과 사회(이하 문사)'가 창간 10주년을, 창작과 비평사의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은 복간 10주년을 맞았다.

그 10주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서는 이유는 이 두 계간지가 암흑했던 1980년 7월말 국보위의 결정으로 폐간당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신군부는 10·26 이후 지식인 사회에 대한 억압의 방편으로 '창비'와 '문학과 지성('문사'의 전신, 이하 문지)'을 강제 폐간시켰다. 그로부터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기까지 한국 사회는 짙은 먹구름을 안고 살아왔고, 한국 지식인 사회는 권력의 군화발 아래 숨죽여 지냈다. 따라서 1988년 봄 '문사'의 재창간과 '창비'의 복간은 한국 지성의 복권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1966년 창간된 '창비'는 시분야에서 신동엽, 김남주, 신경림 등에게 중요한 활동무대를 제공했고, 소설가 이문구, 황석영, 송기숙 등은 '창비'를 통해 황홀한 비상의 기회를 가졌었다. '문지'는 1970년에 창간돼 조세희, 이청준, 황동규 등을 발굴·육성함으로써 한국문학의 깊이와 외연을 한층 풍부하게 하였다. 또한 두 잡지의 대표작가들의 면면이 뚜렸이 변별되는 만큼, 지금까지도 간혹 '순수와 참여 논쟁'하면 상식적으로 '창비'와 '문지'의 대립을 떠올리곤 한다. 이 두 계간지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현대 문학'을 추긍로 하는 기성 문단에 도전을 감행하며 성장했던 것이다.

이번 봄호가 두 계간지에는 재창간 10주년, 복간 10주년이기는 하지만 30여년간 한국문학계를 가로질러 온 두 잡지의 성격을 성찰적으로 점검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된다. 저항과 도전의 역사속에서 성장해 온 이 두 계간지가 이제는 문단의 무시 못할 중심축으로 변질됐고 이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의 화살은 대체로 두 계간지가 보이는 매너리즘과 권위주의에 가 닿고 있다.

재창간 이후 10년 동안 '문사'는 언어의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적 소비를 부추기는 상업주의 문화와의 투쟁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문학' 자체를 옹호하기 위해 변함없이 싸워오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모습은 자신들의 병사에게는 끊임없는 애정을 주지만 다른 군대와 연합하는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한 태도이다. '문지사단'이라는 비아냥은 이 속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문사'는 항상 근엄하고 고루하다. 프랑스 지식인의 모습을 흉내내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다원주의를 지향한다. 그러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문학의 중심'에서 이탈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사'의 특징은 특집 '21세기의 전망: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가치중립은 명예에 대한 집착의 다른 표현이며 근엄함은 숨겨진 권위주의가 얼굴을 달리한 것일 뿐이다.

반면 '창비'는 민족문학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근대 및 근대극복의 문제, 분단체제 등의 담론들을 생성시키면서 가끔은 옷을 바꿔입기도 하고 자화자찬도 하면서 자신의 성으 공고히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창비'는 서서히 늙어가는데 이는 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훌륭한 문제의식에 귀 기울이지 않느냐고 투정부리는 '노인성 조바심'에서 잘 드러난다. 이번호 특집 '회화: 백낙청 편집인에게 묻는다'는 독자들을 민망하게 만든다. '문사'가 근엄함을 가장해 권위주의를 드러낸다면, '창비'는 좀 더 천박하게 자신의 권위를 독자에게 강요하는 모습으로까지 비춰진다.

1970년대 '창비'의 안티테제나 '문지'의 비판정신이 기성체제에 대한 위협적인 도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중심이기를 거부하는 적극적인 혁신의 자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두 계간지는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 권위의 영향력 밑으로 문인들이 들어오기를 원하고 있다. 그들이 깨뜨리고자 했던 것을 이제는 건축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문학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금의 '창비'와 '문사'가 아니다. 70년대에 존재했던 그들의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전하려던 정신만 필요할 뿐이다. 문학이 자기혁신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창비'와 '문사'를 전복시키기 위해 투쟁하게될 다른 문학지들에게 기대해야 할 것 같다.

모든 주변은 중심을 지향하지만 중심에 진입하는 그 순간 바로 타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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