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에서 '오해를 풀다'라는 말을 보고는 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이 발동하여 '풀다'가 무슨 말에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풀다'의 반대말은 '묶다'이고 묶은 것을 '매듭'이라고 한다. 원시시대부터 '묶고 푸는 것'은 띠풀을 이용하다 생긴 말일 것이고 자연스레 '풀다'와 풀(草)이 연결된다.

들판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풀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라. '자유로움',이것이 '풀다'의 원형이다. '매듭을 풀다. 오해를 풀다. 분을 풀다. 피로를 풀다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몸을 풀다. 사람을 풀다. 코를 풀다.는 매여있는 것으로부터 분리시켜 자유롭게 해 주는 거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재미있는 말은 '심심풀이'이다. '심심'이란 '마음'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니. 외롭고 쓸쓸하다. 그런데, 이 쓸쓸함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시켜 주는 것이 심심풀이인 것이다.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과 만남으로써 잠시나마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생기면 이러한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유를 향한 '풀기'를 시도하는 슬기로운 민족이다. 그래서 혹자는 우리 문화를 푸는 문화라고 설명한 바도 있다. 우리 민족이 독자적인 문화를 일구어 온지 어언 5천년, 오늘날 많은 이문화가 유입되어 무엇이 진정 우리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이런 아름답고 유서 깊은 말들로 인하여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를 실어 나르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깊은 웅덩이에 빠져 헛바퀴만 돌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모두 제 생각에만 빠져 있어 문제가 해결되질 않고 있다. 끼리끼리만 서로를 묶고 결속을 다지고 있어, 점점 더 힘들어질 뿐이다. 지금 이때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말은 바로 이 '풀기'가 아닌가 한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묶어 두었던 마음의 매듭을 풀고 바람에 흩날리듯 자유롭게 우리를 열어 놓을 때이다. 그러면 우리는 바람결에 따라 모두 한 방향으로 흩날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며,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질긴 동아줄로 묶은 소집단의 매듭을 과감히 풀고, 모두가 손을 걷고 나와서, 당장은 빠진 수레바퀴를 건져 올리는 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계속해서 풀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인즉, '묵은 오해도 풀고' '어려운 문제도 풀고' 지금껏 대대로 나쁜 짓 해서 잘먹고 살아온 사람에게 분도 풀자' 피곤하면 '서로의 피로도 풀어주고' 먹고 살기 힘들어 지면 '돈을 풀어 서로에게 도움을 주자'

풀자. 풀어. 풀고 풀면 마침내 그 간절한 '소원'도 풀 수 있을 것이니.

이찬규〈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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