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여러 취미나 소일거리가 있겠지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산책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사고의 정리나 새로운 설계를 위하여 의미 있는 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런 연유로 세계의 여러 대학도시에는 예외 없이 '철학자의 길'이니 '학자의 산책로'니 하는 이름의 산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환경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도시와 대학생활에 있어서 파리의 세느강변이나 캠브리지대학 뒷면의 캠강 주변에 펼져지는 산책로와 같은 '조용한 후면'으로서의 산책로의 필요성을 자신의 패턴 랭귀지에서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한 '조용한 후면'으로서의 산책로는 못되더라도 아쉬운 대로 교정을 거닐며 상념에 잠기거나 나지막이 사담을 나눌 수 있는 조용한 산책로를 찾다보면 불현듯 우리의 환경에 대한 시민의식이 먼저 앞서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얼마나 대학다운 환경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여 왔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반성을 요한다. 대학의 환경이 도시환경을 이끌어가야 할 것임에도 오히려 대학 스스로 환경을 저해하는 행위를 수없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형식적인 분리수거마저도 하지를 않아 깡통 모으는 통에 일반쓰레기가 쌓이고 빈 병속에는 담배꽁초를 집어 넣고 있지 않은가. 밤낮없이 두들겨 대는 꽹과리소리가 우리의 교육환경을 또 얼마나 저해하고 있는가. 임밋시온이다 생활방해다 하여 독일이나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엄격한 책임을 묻고 있는 환경침해가 우리 대학에서는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으니,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행위가 반규범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른 아침 교정 잔디밭 여기저기에 뒹굴고 있는 빈 술병과 음식물 쓰레기, 일회용 용기들이 뒤엉켜 있는 것을 볼 때면 청소하시는 분들에 대한 송구스러움에 앞서 대학이 무법천지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번에 학생회에서 전개하고 있는 종이컵 안쓰기 운동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시도이다. 이러한 노력이 반드시 성공적인 결실을 맺고, 대학의 환경운동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나아가서는 이것이 학생들의 시민계몽으로 이어지고 대학주변의 환경 조성에도 기여하는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좋은 환경을 향유할 권리'로서의 환경권은 우리 스스로 환경에 대한 규범의식이 체화(體化)된 생활을 할 때에 제대로 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느날인가는 흑석동 캠퍼스를 둘러 산책로도 조성되어 뒤로는 국립묘지 뒷산으로 연결되고 앞으로는 흑석동을 통과하여 한강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을 것을 상상해 본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울려대는 꽹과리 소리를 들으며, 몇 번을 집어와도 사라지지 않는 잔디밭의 병뚜껑이며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종이컵을 보며 해본 생각이다.

장재옥 <법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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