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전쟁과 혁명의 백년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 국가나 종족사이에 무력충돌이 없었던 때는 아마 한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세계 제국주의 열강들은 세계 분할에 착수하였다. 유럽에서는 영구·프랑스가, 아시아에서는 미국·일본이 맹주가 되어 식민지 쟁탈전을 전개하였고 독일·러시아가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어 아프리카, 중동, 태평양 제국에서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 충돌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유럽에서는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영국 ·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1914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도착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의 범슬라브주의의 비밀결사에 속하는 청년에게 피살당함으로써 1천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초래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베르사유체계와 워싱턴 체계로 대표되는 전후 세계질서는 20여년만에 일어난 2차대전과 함께 끝이 난다. 2차 세계대전은 이념의 가명을 쓰고 자행된 학살이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나치즘과 파시즘, 소련은 공산주의를, 서방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내세웠다. 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스페인 내전을 둘러싸고 세계는 공화파 사회주의 정부를 지지하는 나라와, 프랑코 군부 파시스트 세력을 지지하는 나라로 이념적 분열의 조짐을 보였다.

2차 대전후에도 전쟁과 혁명을 계속되었다. 미·소는 냉전속에서 서로 자신의 이념을 확장·팽창시키기 위해서 세계 곳곳에서 대리전을 1950년대의 한국전과 60년대의 베트남전이 모두 미·소의 대리전이라는 양상을 띠었다. 한국에서는 공산주의를 표방한 소련의 지원을 얻은 김일성이 미국의 지원을 얻은 이승만 정권을 겨냥해 남침을 하였고, 베트남에서는 프랑스의 제국주의 세력을 대신한 미국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지원한 중국이 맞붙었다. 혁명은 남미에서도 계속되었다. 쿠바가 공산화되었고 멕시코, 볼리비아, 니카라구아, 온구라스의 국가가 내전에 휩싸였다.

전쟁은 많은 역사, 사회, 정치학자들의 연구과제였다. 초기의 전쟁이론가들은 전쟁의 원인을 선악의 관점에서 인간의 동기와 의지에서 찾았다. 그들은 전쟁을 정책결정자 개인의 양심문제로 보았다. 그 후 19세기 들어와 다이모드는 전쟁을 '이득을 보는 자들의 계산의 산물'로 보고 '전쟁의 악마이론'을 주장하였다. 엔젤경은 '거대한 환상(The Great Illusion)'에서 전쟁이 사회 경제적으로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주장하며 전쟁 무용론을 주장하였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전쟁의 원인에 대한 보다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첫째 프로이드는 '죽음본능'이론을 주장하였다. 1차 대전이후 프로이드는 생을 향한 본능인 에로스(Eros)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로 인간의 본능을 구별하고, 인간은 생물학정으로 자기파괴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즉 전쟁을 죽음을 향한 본능의 발산으로 본 것이다. 둘째 '좌절·공격'이론이다. 둘라스는 모든 공격·파괴행위 뒤에는 좌절된 욕망이 있다고 보았다. 셋째 '스키너의 자극·반응 이론'이다. 즉 인간은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는데, 한 국가의 적대적 행위가 다른 국가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을 악순환시키면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입장이다.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이성로, 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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