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퓌스 사건은 인권선언의 발생지인 프랑스에서 일어난 아이러니한 사건으로, 당시 유럽의 골칫거리의 하나인 유대인 차별운동과 프랑스내의 독일에 대한 국가안보의식이 불공평성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정부의 여론조작은 확증없는 3년여의 재판을 결국 드레퓌스라는 한 속죄양을 희생시킴으로써 끝나게 되어 있엇다. 철저히 눈가려짐의 비정확성앞에서 졸라는 신문의 1면을 빌려 8백줄에 달하는 대탕원의 글을 실음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이것은 전국민적 차원에서 대토론을 이끌어 냈을뿐 아니라, 당시 그가 이끌던 자연주의 운동의 기수로서의의 면모와 제르미날의 작가로써의 사명감을 보여주었다. 혁명 이후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받고 또한 국가 최고 이념으로 존중되었다고 생각해 왔던 프랑스인들에게 이는 크나큰 사건이었으며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이로부터 개혁주의자, 진보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의 지식인들이 참여하면서 현대의 미셀 푸코에 이르는 '지식인들의 참여(앙가주망:engagement)'라는 프랑스 지식계의 한 전통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의 급격한 변화·확대는 곧 유럽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각 지에서 찬사와 격려뿐 아니라 비난도 쏟아졌다. 20세기를 여는 문턱에서 전 유럽이 이 사건으로 찬성과 반대 두 파로 갈라지기까지 하였다. 다음의 편지는 독일 베를린에서 한 소녀 Kating Harkfeldt 가 졸라에게 보낸 편지로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싸움의 기나긴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어제 저녁 아버지께서 National Zietung지를 주시며 당신께서 쓰신 글을 꼭 읽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무척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전에 한번도 당신의 글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어머니께서 17살짜리 여자애들이 읽을 책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제는 당신이 쓰신 다른 글들을 읽고 싶군요... 이 편지는 무죄인 사람을 위해 쓴 당신의 글에 커다란 존경을 표시하는 부모님과 전적으로 동감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러나 그 후 졸라의 용기의 대가는 고소와 추방 그리고 사건의 종말을 보지 못한채 맞이한 죽음이었다. 1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accusisme은 끝나지 않고 있다. 아 첨단의 테크닉 사회에서 매일 접하게 되는 모든 매체들을 통해서 비록 개인적으로는 그들과 관련이 없지만 우리는 인간 양심에 따라 한 지식인으로서 단호히 머리를 흔들어 거부하고 또 다른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기보다는 사회를 고발하기 두려워하는 지식인들을 위협하며 고문하고 추방하고 감옥에 가두는 모든 것들을 고발한다.

아프리카 가나의 시인 Amu djoleto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조용히 지저귀길 바란다면 나는 그렇지 않겠소. 그러나 내가 이렇게 시끄럽게 울어대길 바라지 않는다면 나 그렇게 하겠소" 이렇듯 전체적인 비판의 울음이 모든 정부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요. 광신에 빠진 애국주의자들과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고발한다. 자유를 억업하고 인권을 조롱하며 지식인들을 억압하는 정부들과 그와는 반대인 희생자들을 고발한다, 중국의 Liu Xiaobe와 Gao Yu 방글라데시의 Taslima Nassen... 한국의 박노해와 황석영.

그리고 또한 이 accuisme은 세계가 더욱 가까워진 지금 각국의 상황에 따라 악용되고 있다. 보스니아는 세르비아를, 세르비아는 보스니아를, 클린턴은 후세인을, 후세인은 클린턴을, 여전히 이 현상은 계속된다.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도들, 프랑스인들과 알제리인들, 남한과 북한, 중국 본토와 대만, 터키와 쿠르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이것이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사이비 accusisme이다.

즉 자신이 희생자임을 계속해서 강조하며 나 아닌 다른 이들은 덜 불행하다는 피해의식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인권문제에 있어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이기 떄문에 우리가 지양해 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이의 희생타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책임으로 떠맡아야만 한다. 다른 이들을 손가락질 하기보다는 책임을 져야한다. 나는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졸라가 1백년전에 했던 바로 그것이다.

Le Nouvel Observateur 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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