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를 맞아 최근 알려지는 일련의 해고 사태들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일부 기업들이 "어차피 대대적으로 인력은 감축해야 한다면 남자에 비해 생계에 대한 책임이 덜하고 생산성도 낮은 여성근로자들이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태도로, 일하는 여성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10여명의 여성사원만을 전원 정리했거나 감원대상 10명 중 8명이 여성이었다는 광고회사들의 사례가 보도되었다. 왜 이렇듯 일하는 여성들의 대한 일방적인 합리적 기준이나 논의의 절차 없이 여성 우선 해고의 논리가 공공연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인가.

인원감축에 대한 자본의 이해는 정규직 중심의 남성가부장을 보호하는 가부장제의 이해와 손을 잡고 여성의 노동권을 부정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의 비정규직들은 계약해지와 중단에 의해 노동시장에서 쫓겨났다. 그들은 대부분 기혼여성이었고 통계적으로 실업자로 규정되기 보다는 비경제 활동인구로 집계되기 쉽다. 정규직 여성들에게도 남성 생계부양자 논리는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근속연수가 짧아 생산성이 낮다고 트집잡던 경쟁력 논리도 뒷전이다. 근무연수가 오래된 여성들이 우선적으로 해고대상이 된다. 혼자 버는 남성 가장을 위해 결혼한 여자는 집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역할인 '주부'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한다.

남성-직장, 여성-가정이라는 일차적 역할에 대한 성별분업원리는 위기상황에서 그 영향력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여성들은 자신의 생존과 가족생계를 위해 여성노동자로서 저항하여야 하며, 이는 동시에 가부장적 성별분업에 대한 도전임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공황과 경제위기는 사회를 보수적으로 몰아가고, 국가나 자본은 전통적인 성별분업 강화를 위기에 대한 처방으로 사용했던 역사적 선례들이 있다. 1930년대 미국 공황기에도, 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에도 남성중심의 편의주의적 발상은 보수의 칼로 여성을 내리쳤다.

1998년의 한국사회에서 이와 유사한 처방들이 행사되고 있다. 감원 1순위 맞벌이 여성, 2순위 두 자녀 여성, 3순위 한 자녀 여성, 4순위 임신여성... 한번도 설거지하는 남성을 찬양한 적 없는 한국사회가 구조조정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은 가히 원시적인 수준이다. 강도 높은 보수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부합하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그것이 작동하는 가족, 시장, 공동체의 영역에서 때로는 서로를 강화하지만 때로는 모순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IMF체제하의 한국은 이제 그러한 관계가 표출되는 실험대가 되어 버렸다.

또한 IMF를 극복하기 위한 캠페인의 상당부분은 가계절약에 집중되며 가계부를 알뜰히 쓰고, 좀더 값싼 물건을 구입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실천은 위기가 아니더라도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강조되는 것은 마치 이러한 역할이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여성들의 최상의 역할인 것처럼 과장되고 있다는 것이며, 일하는 여성들의 주부로의 복귀를 부추기는 현상과 맞물려 전통적인 여성 역할의 강화를 가져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별화 된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한 위기는 더욱 강력하고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한다. 여성운동과 여성노동자들은 고용평등에 대한 열망으로 여성들의 직업적 지위에 대한 요구들을 끊임없이 제기하였고 지금도 그러한 싸움과 투쟁의 와중에 있다. 여성들은 현재의 위기를 경험하는 선발대였다 임시직, 계약직, 시간제, 파견노동은 90%이상이 여성이었으며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위험을 항상 경험하였다. 인건비 절감의 주된 대상자도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제 국가 부도의 벼랑 끝에서 대량해고의 살생부는 여성의 이름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 여성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여성'으로서 IMF 시대를 극복하는 가장 절실하고도 기본적인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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