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유언처럼 빕니다."

비장함마져 감도는 장내 분위기, 꽃다발, 조용한 고개 숙임, 장례식장의 모습이 아니다. 바로 지난달 27일 정년 퇴임 식의 표정이다.

퇴임자 대표 최창균 전 2캠 관리처장이 이제 막 무겁게 운을 떼고 있다.

"대학에서 보낸 34년이란 세월은 임영신 여사의 말처럼 정말 피와 땀과 눈물의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단 4년, 보람을 느낀 것은 단 4년뿐이었습니다."

모두 34년 근무자의 때아닌 고백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정말 뜨거운 가슴으로 일하려는 생각, 하지만 비효율적 행정으로 일하기조차 싫어 눈을 감고 싶었던 때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처장은 이사장이 총장에게 관련 업무 책임을 위임하고 총장이 처장에게 믿고 맡겼던 그 오래된 4년이 그립다며 말을 이었다.

"김희수 이사장님! 도둑도 자기에게 맡긴 물건은 훔치지 않습니다. 총장님께 많은 권한을 위임하십시오."

34년 근무의 마지막 자리라고 생각해서 인지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 하지만 자리에 이사장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 사정이 생겨 떠났다고 했다.

"하늘은 수시로 바뀌고 명령 하달식 행정 속에 일에 대한 열정은 식어가고 뱃심도 배짱도 없이 무너져 가는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공기는 무겁기만 하다. 안경을 벗고 눈가를 훔치는 사람도 보인다.

어색한 공백의 시간, 아무 말도 없었다. 끝인가 했다.

"주제 넘는 말인 것은 알지만... 교수님들께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올바른 교육철학이 있는지 교육철학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건이지 자문해 보십시오."

조용한 술렁거림 그리고 또다시 적막, 그것이 34년 근무의 종착점이었다.

과연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을 그 시간의 흐름에 변하지 않았던 대학 행정의 모순은 무엇인가. 그는 왜 일하기조차 싫어지고 때로는 무너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으며, 왜 교수들의 교육철학의 존재 여부 마저 의심하게 되었던가.

여하간 그는 타성에 젖었고, 뱃심도 뚝심도 없이 무너져 갔으며 그가 유언처럼 들어달라는 말은 슬픔으로 기억될 것이다. '유언'은 같이 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마지막 넋두리이고 실천은 늘 남은 자의 몫으로 돌려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또 다른 그의 모습으로 무너져가고 지금의 우리 모습을 한 또 다른 우리에게 같은 아픔을 되 물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반성해야 했던 34년의 무게만큼이나 그의 '유언'이 버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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