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는 고통분담이다. 이 말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공감하고 있고 정권 역시 갈등 해결의 이념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분명 고통분담이라는 단어 속에는 '우리식'의 정서와 논리가 반영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이 고통분담이라는 어휘는 종종 이중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고통분담이라는 말은 과소비 추방 같은 캠페인과 함께 구호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즉 현재의 위기에는 국민 모두가 책임이 있으니 고통도 일률적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가 표방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외연에도 합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그 구호에 숨어 있는 현재 경제 위기 원인의 본질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위험성과 의도성에 있다. 우리 문제의 근본 원인은 과소비나 수입품 때문이 아니라 한마디로 경제권력의 편중이 불러 온 도덕적 해이함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군국주의'라고 할 수 있는 재벌 위주의 경제체제와 이와 관치금융을 매개로 공생해온 기득권 세력의 해소가 IMF 시대의 국민의 요구임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다. 결국 고통분담의 진정한 의미는 지금까지 경제권력에서 소외당하여 고통을 전담해온 계층이 기득권 계층에 책임을 물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우리의 문제를 올바로 접근하는 출발점이라도 본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늘 국산품애용이나 금모으기 같은 캠페인과 구호속에서 합리적인 대안과 정당한 국민 요구를 매몰시키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위기를 금융기관과 직전 정권의 무능력 탓으로만 돌리는 보수언론의 시각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잘못은 금융기관들에게 있지 열심히 일한 재벌이야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한 재벌 총수의 항변에서 기득권 세력과의 진정한 고통분담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절감하기도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작고 효율적인 정부'라고 하지 않고 '작고 강력한 정부'라고 언급한 것에 이런 맥락에서 동의한다. 그러나 최근 몇몇 기업들에 대한 무원칙한 협조 융자나, 정부 관료들의 반발에 밀려 행정 개혁을 온전히 달성하지 못한 것 등은 정부 주도의 문제 해결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은 사회의 권력을 아래로 분산시켜 국민들이 경제 주체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익을 극대화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의 위기가 기득권의 선전 구호에 어우러져 종종 피가학적으로 의심되는 만큼 순종적인 국민의 '애국심'이 아니라, 모든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인 행위에 의한 이해의 합치점에서 출발한 대안으로 위기에 대처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수 국민의 소비자로서의 권익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재벌을 포기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제 냉철하게 판단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계층의 다양한 이해와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원론적 명제를 실천해야 하는 시기가 이제 우리 앞에 닥친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IMF 위기 극복이라는 동기 속에서 우리 사회가 필연적으로 겪게될 계층간의 갈등의 과정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해서는 안된다.

지금 이러한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교조나 노동정당의 탄생인데. 이런 새로운 변화가 계층 갈등이 적절한 균형에서 해결되도록 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 매체들이 중립을 유지하는 것들은 다른 경제적 노력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IMF 체제의 문제는 우리에게 많은 부분이 아직도 사회 지배 구조의 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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