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들 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화판 앞에서 자신들에게 처해진 부당한 처사를 묵묵히 감내해야만 했던 시절은 지났다. 문민정부에 이어 문화예술에 대담한 탄압을 가해오기 시작한 국민정부의 정책에 일군의 작가들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전국민족미술연합(공도의장:김윤수,김정헌, 이하 미술연합)소속 회원 19명은 신학철 화백의 작품 '모내기'관련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풍자전 '불온한 상상력'을 개최했다. 인사동의 복합문화공간21세기화랑에서 지난 4월 29일부터 시작해 오는 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신학철씨의 '모내기'를 모방, 재현, 변형한 작품들로 마련되었다.

지난 3월 13일, 대법원은 신학철 화백의 작품 ' 모내기'가 이적 표현물로서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며 원심을 파기, 사건을 다시 서울지방법원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원래 '모내기'는 87년 제1회 동일미술제에 출품됐던 작품으로 후에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압수, 작가는 구속되었으나 92년과 94년 1.2심에서 혐의사실이 무죄로 판정되었다.

원심을 파기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그림 상단부의 북한은 풍요롭게, 하단부의 남한은 매판자본과 독재권력 등으로 묘사한" 이적표현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학철 화백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였던 기억 속의 고향마을을 그려본 것이다. 통일이 된다면 이런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을 표현했을 뿐"이라며 당황해 했다. 미술연합 또한 "한국은 대법관나라"라고 강하게 비판을 제기하고 나섰으며 "이번 재판결과는 수구세력이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 김대중 정부의 성격이 어느 정도로 불투명한지도 보여 준 사건"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에 들이댄 '풍자의 칼날'은 무디기 짝이 없었다. '모내기'의 모방, 변형이라는 다소 우회의 길을 택한 전시작품 19점은 날카로운 비판력을 보여주기에 역부족이었다. 강력하고 체계적인 입장표명보다 '그것이 그것 같은 '몇점의 작품들로 꾸며진 전시회는 오히려 '명분'으로 굳어진 듯한 인상조차 풍긴다. 창작 표현에 사법적 잣대를 갖다댄다는 사실에 고통받는 예술인들, 그들의 잃어버린 파라다이스를 찾기 위한 과감한 붓질이 아쉬운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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