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5대 대선의 경우 '제2기 문민정부'의 수장이자 21세기를 준비하고 21세기를 여는 '21세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현재의 김영삼 정권의 경우 뒤늦게, 그것도 정략적 결정이라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등 과거의 군사정권의 역사적 심판에 착수하는 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그 역사적 뿌리에 있어서는 '3당통합'의 원죄로 인해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그 순도가 떨지는 '불완전한 문민정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6월 항쟁 10주년인 올해의 대선의 의미는 더욱 증폭된다.

3당합당을 통해 구권위주의 지배블록에 가담하고, 1992년 대선에서 '민주연합세력'과의 대립적 경쟁을 통해 집권한 대통령이, 지배블럭의 저항을 극복하는데 기반이 될 수 있는 시민사회내 조직화된 힘을 동원할 수 없었고, 이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포함한 총체적 파국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따라서 이른바 '민주적 공고화' 과정이라는 긍정적 평가와는 달리, 그것은 '제한적 민주주의'일 뿐이라는 점과, 또 구체제와 구질서가 역사의 박물관으로 퇴장하지 않은 채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선별적 억압과 제한적 포섭을 통해 변혁을 포함한 민주화의 진전 요구를 억누르고 길들이는 과정에 다름아니라는 점에서, 그리하여 결국 민중참여적 민주화의 길이 아닌 민중배제적 민주화의 길로 나아갔던 점에도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경로였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스럽게 현 '문민정부'의 성격 규정 문제로 우리의 관심을 모으게 하였다. 그동안 김영삼 정권의 국가성격이나 개혁의 본질, 그리고 그 시기적 특성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논의와 논쟁이 있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속에서 '이완된 파시즘'이나 '파시즘적 자유민주주의', '양면적 체제', '제한적 민주주의를 통한 지역 분할제체의 제도화', '부르주아 정권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국가코포라티즘', 그리고 '타협적 야당의 지배계급에의 투항을 통해 성립한 제3세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국적 왜곡형태' 등의 평가가 내려지기도 했다. 문민정부의 개혁이라는 것이 출범 이후 '중단 없는' 개혁에서 '오리무중'의 개혁을 거쳐 개혁의 실종으로 마감되었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한편 우리의 1997년은 '해체' '퇴진' '타도' 등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나 들어봄직한 담론의 분출 속에서,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 등 가히 '제2의 6월항쟁'을 방불케 하는 민중저항의 물결로 시작되어, 지금은 '문민의 탈을 쓴 독재'로는 안된다는 범민중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또 이것이 시대적 분위기로 확산되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15대 대선이후 출범하게될 정권은 김영삼 정권과 어떠한 차별성을 갖을 것이며, 국가성격의 근본적인 변동가능성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집권과정의 '민주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내 조직화 된 개혁세력과 강력한 연계를 통해 민주정부가 들어서지 않는 경우, 새로운 정부가 구체제의 지배블럭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개혁은 대중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화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개인의 권력과 비공식적인 권력기구를 이용한 개혁은 쉽게 역전되며, 후견주의로 급속하게 퇴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셋째, 호남문제로 대표되는 지역문제에 대한 통합의 노력 없이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경쟁의 분획선으로 '반호남'에 집착하는 한 광범한 개혁연합은 분해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문제는 권력창출의 '민주성'과 관련되는데, 이것을 세분화하면 △'권력주체의 역사적 정당성'으로서의 '민중지향적 실천행위'와 △'게임의 규칙'의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라는 측면으로 나뉠 수 있겠다. 여기서 '민중지향적 실천 행위'는 대선후보의 자격기준을 민주화투쟁 경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입장과 최소한 5, 6공세력과 결합된 전력만 없다면, 과거 민주화투쟁이나 민족통일투쟁 등에 참여한 경력이 없더라도 자격이 있다는 주장, 그리고 유신 및 5, 6공과 공범 및 공생관계에 있었다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입장 등에 따라 평가가 다를 것인데, 일부 수구언론에 의해 유포되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개발독재)의 확산논리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15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내각제 개헌 등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한 논의가 공개적으로 제기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게임규칙의 정당성'의 문제와 결부된다. 권력구조와 관련한 문제가 21세기 한국정치의 총체적 발전 전망과 관련하여 상당히 중요한 주제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공론화는 시급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현 시기 정치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권력구조 개편논의는 제도개선 차원의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그 저의와 동기가 아주 불순한 것이며, 나아가 그 시기와 조건 및 향후 발전 전망의 측면에서 봤을 때도 내각제로의 개헌은 긍정성보다는 부정적인 폐해가 훨씬 크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둘째는 '권력행사'의 민주적 제도화 내지는 정당화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는 권력행사에서의 합법성, 도덕성, 민중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현 문민정부의 특징인 '칙령주의(decretism)' 형태의 '깜짝쇼' 연출과 통치행태는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문제의 해결이 다. 마치 '두개의 국민'전략-복지국가의 위기와 관련하여 대처와 같은 신보수주의가 채택한 전략으로서 국민을 '선한 국민'(근면한 중산층)과 '악한 국민'(기생적 복지수혜자)으로 나누어 후자를 배제하고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서 전자의 지지를 얻어내는 일종의 분할 통치전략을 말한다- 처럼 지역문제 역시 '선한 국민'인 비호남대 '악한국민'인 호남 간의 '두국민 분리통치전략'에서 기인한다.

21세기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주의의 철폐와 함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핵심세력인 관료와 재벌과 언론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그 병폐를 고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무한 경쟁의 시대와 통일의 시대를 맞이하여 이에 대한 효과적이고 능동적인 대처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도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패권적 지역주의 정치형태는 시급히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분단체제하에서의 최소민주주의와 온건보수적 협약에 의한 점진적 민주주의의 프로젝트로의 이행은 국가와 보수적 지배질서가 지배하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근본적 변동의 전망을 밝히지 못한다. 현 대권후보들 가운데 이러한 구조와 행위의 질곡을 벗어날 인물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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