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날아 로봇야, 달려라 달려 태권V."

1970년대 중반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극장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따라 부르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로보트 태권V'. 이 작품은 김청기 감독을 뜨게 만든 작품이면서 동시에 작가 김형배가 만화계에 발을 딛게 해 준 작품이다. 보편적으로 출판만화에서 인기를 끈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이전하는 경로와는 다르게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을 먼저 제작하고, 그것을 다시 출판만화로 제작해서 오랜 기간 동안 독자들의 뇌리에서 익숙해진 작품이다.

출판만화로 제작된 것은 '로보트 태권V 시리즈'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바로 이 과정이 김형배의 '로보트 태권V'인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캐릭터나 구성 등에서는 김형배의 창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출판만화에서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는 '로보트 태권V'의 작가로 김형배를 이야기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 작품을 계기로 해서 김형배는 '황금날개', '20세기 기사단','최후의 바탈리온', '우주 해적 사이코', '바람개비' 등과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한국 SF만화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악인인 우주들이 지구를 지배하기 위해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인과 싸우는 과정을 그린 것이 SF만화의 고정된 스타일이었다. 김형배 또한 초반기에는 주로 권선징악의 형태로 작품을 하다가 80년대 이후부터는 다면적인 인간형을 구사하게 된다. 그리고 전쟁의 의미에 대한 고민들이 작품 속에 녹아들고, 그에 맞춰 작가의 세대가 월남전에 참전하던 때였던 만큼 작가의 작품은 월남전을 소재로 한 '투이호와 블루스', '황색탄환' 등의 전쟁물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전쟁물이라고 해서 전쟁영웅을 다룬 것이 절대 아니라는 데는 김형배의 작가적 기질이 나타난다. 아주 평범한 군인 '김훈 상병' 은 월남전에 참가한 여러 유형의 인간들과 전쟁의 의미에 대해 많은 물음을 던져 주는 주인공의 역할일 뿐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조국이라든가 또는 위정자들이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전쟁에 투입되어진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이 김형배의 작품세계였다.

그리고 또 한번 김형배는 작가적 변화 발전과정을 겪게 된다. SF만화의 본질에 대해 " 공상과학이란 감히, '대우주적 인간존재에 관한 정의' 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공상과학이란 형식을 빌려 표현하는 모든 수단의 본질은 관념적 사고로부터의 해방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탐구이며 불가능한 가능에 도전하는 진보하는 진보적 행위하고 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김형배는 우주와 인간,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 생명의 비밀 등등 보다 본질적인 탐구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해서 도달하게 된 SF의 세계는 염력이라든가 기(氣), 도(道) 등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아무래도 미래의 인간들이 전쟁 등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개개인의 정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을까? 김형배는 요즘 부쩍 정신세계의 새로운 차원을 연구 중에 있다.
김형배의 작품전반에는 모든 인물들이 하반신이 짧은 기형적 인간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원래 김형배의 그림이 그러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초반기에는 누구보다도 사실적인 그림들을 잘 그렸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김형배의 작품은 세상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하반신이 짧은 인물들은 대부분 장면연출을 위에서 내려다본 각도로 했을 때의 인물모습이다. 보통 이러한 각도는 전체적으로 조망한다거나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 때에 사용한다.

따라서 김형배의 작품에는 세계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김형배는 전쟁과 우주와 사람의 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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