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톰슨이 전자(電子)를 발견한지 만 1백년이 되는 해이다. 1897년 영국에서 발간되는 학술지 'Philosophical Magazine' 10월호에 '음극선'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논문은 인류의 현대문명사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전자의 발견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톰슨은 캐번디쉬 교수라는 직위를 누릴 만큼 학문적인 탁월성을 이미 인정받은 당대의 물리학자였지만, 그가 음극선의 정체는 '음의 전기를 띤 아주 가벼운 입자' 즉 오늘날 일컬어지는 '전자'라고 결론을 내릴 때까지는 7년여라는 연구기간이 소요되었다. 그가 그때까지 학자들에 의해 추론되어 온 '음극선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에테르로부터 발생될 것이다'라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어 놓을 만한 실험적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여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에너지나 전자기파가 공간으로 전파되어 나가기 위해서는 공간에 무언가 이를 매개하는 물질(즉, 에테르)이 존재하여야 된다는 통념은 거의 깨뜨릴 수가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톰슨은 음극선을 발생시키는 유리관 내의 기체를 빼면서 음극선의 진로가 전기장이 걸린 편향판으로부터 휘어지는 것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전기와 질량을 동시에 가진 입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톰슨은 당시 화학자들에 의해 발표된 수소원자의 전기분해에 관한 결과를 토대로 하여 이 입자의 질량을 대략 추정해 본 결과 대단히 가벼운 것임(수소원자의 약 1800배 작음)을 알아내고, 1897년 논문에서 이 입자를 'corpuscle' 즉, 미립자라고 불렀다. 이것이 다름아닌 오늘날 'electron'이라 부르는 전자가 발견된 것이었다.

이처럼 음극선의 정체가 막연한 존재인 에테르가 아닌, 음의 전기를 띤 질량이 아주 적은 입자라고 내린 결론을 뒷받침하는 여러 실험적 자료가 충분히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톰슨은 단정적인 어조를 자제하면서 다음과 같은(원문을 인용하면) 논법으로 주장을 폈다. "If it looks like a duck, quack like a duck, and waddles like a duck, then we have good reason to believe it is probably a duck" 이를 후세의 과학자들은 '오리 논법(duck argument''이라고 부른다. 음극선이 전기를 띠며… 아주 가볍고 입자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전자라는 미립자일 것이라는 논법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전자를 오리에 비유한 것은 아마도 에테르를 신봉하는 당시의 팽배했던 물리학계의 정서 속에서 기존의 통념을 뒤집어 놓은 '미운 오리새끼'가 전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톰슨이 발견한 전자는 물론 질의 기본적인 구성인 원자의 구조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켰고, 이후 알파입자 산란실험을 통하여 러더포드는 원자는 중심에 양(陽)의 전기를 띤 무거운 핵과 그 주위에 음(陰)의 전기를 띤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전자기파를 발견한 헤르츠가 음극선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오류를 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톰슨 또한 원자의 구조를 수박씨 모형으로 설명하려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전자의 유용성이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기술적 수준으로 실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톰슨의 전자는 그 정체가 완전히 규명된 것은 아니다. 전자의 크기는 얼마이며 전자 역시 다른 무거운 입자처럼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전자는 쪼개질까. 왜 조물주는 전자, 뮤온, 타우라는 세 명의 경입자 가족(물리학자는 이를 세 가지의 향기(Flaveor)라고 부른다)만을 만들었는가. 경입자 가족의 사생아인 중성미자(Neutrino)는 과연 질량이 있는 것일까 등의 근원적인 질문에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채 금세기를 마감할 것 같다.

이러한 물음에 정확한 해답을 내놓기 위해서 우리는 다가올 21세기라는 또 다른 백년을 전부 보내야 될지도 모를 것이다. 우리의 후배, 제자, 손자, 제자 중 누군가가 톰슨의 '오리 논법'을 다시 들고 나와 "음극선의 정체는 전자였었고, 전자의 정체는 무엇이다"라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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