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는 허영만, 박봉성과 더불어 80년대 제2차 만화붐을 이끈 주역이다. 만화를 음지에서 끌어내어 성인들의 오락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큰 몫을 한 것이 바로 그였다. 그에게 '만화세대의 대부', '대중문화의 새 장을 연 장본인' 등 화려한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또한 '마이다스의 손'이다. 야구·권투 등 스포츠에서 SF, 액션, 역사, 전쟁물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선보이지만 그의 작품은 발표하는 족족 큰 성공을 거둔다. '국경의 갈가마귀', '공포의 외인구단',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활', '아마게돈', '남벌' 등 숱한 히트작은 그에게 부와 영광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게다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까치 오혜성과 엄지는 한국의 대표적인 만화 캐릭터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현세는 '재미' 지상주의자다. 만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극단적으로 "재미없는 만화는 죄"라고 까지 얘기한다. 그의 만화의 재미는 치밀한 구성, 탁월한 묘사, 현란한 연출에서 나온다. 거기에 웃음과 분노, 공포와 비극, 복선과 반전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그만의 특유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재미 요소들이 만화적 리얼리티로 탄탄하게 연결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만화에는 페이소스가 짙게 배어있다. 그것은 그의 암울했던 어린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후사없이 홀로된 백모의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아버지의 죽음을 삼촌의 죽음쯤으로 여긴데 대한 죄책감, 그리고 인기 만화가가 되기까지 지겹도록 쫓아다녔던 찢어지는 가난. 이 두가지 콤플렉스는 그의 만화가 도가 지나친 극단주의로 흐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가 즐겨 다루는 주제는 너무 흔해 빠진 사랑과 우정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지고지순한 순애보는 결코 아니다. 그의 사랑관은 '사랑은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요,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지독한 사랑'이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대사로 유명한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까치의 이런 외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집착에 가깝다.

그 사랑 한 켠에는 우정이 있다. 까치와 백두산 사이의 남자의 우정은 까치와 엄지의 사랑을 뛰어 넘는 절대적인 믿음이다.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에서의 순이와 주희의 여자의 우정 또한 죽음을 초월한다. 어쩌면 이현세는 사랑보다 우정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현세 만화의 또 하나의 축은 '극일'이다. 일제가 일으킨 만주 사변에서 할아버지를 잃은 탓인지 그는 일본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나라를 뺏긴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믿는 탓에 힘을 기를 것을 요구하며 "강한 것은 아름다워"라고 외친다. 그의 반일감정은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나 '남벌' 등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남벌'에서는 일본본토를 쳐들어가 기어코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고야 만다.

그는 떠한 지독한 남성우월주위자다. 그의 만화는 기본적으로 남자들의 힘과 승부, 욕망과 집착의 드라마다. 그의 작품 속의 여성은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일 뿐 결코 주체적인 존재는 아니다. 물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며느리밥풀꽃에 관한 보고서', '블루 엔젤', '엔젤 딕'같은 만화도 있다. 그러나 그가 남자못지 않은 강한 힘과 뛰어난 지략을 가진 여성을 캐릭터로 새롭게 창조한 '블루 엔젤', '엔젤 딕'의 하지란 형사는 작품속의 동료들에게 전혀 여성적 존재로 인식되지 않고, 만화밖의 독자들에게는 관음적 시선으로 존재할 뿐이다.

올 7월, 청소년보호법의 시행과 더불어 시작된 만화사냥으로 이현세는 지금 '음란만화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검찰에서 그가 그린 '천국의 신화'가 비록 성인용이지만 청소년에게 유해한 음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죄목으로 소환했기 때문이다. 소환당시만 해도 당장에라도 구속시킬 듯이 기세등등했던 검찰이 아직까지 잠잠한 것을 보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만화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된 '천국의 신화'가 그의 약속대로 1백권까지 꼭 완결되기를 바란다.

김이랑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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