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불안하다.

경제위기, 취업불황, 이제는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한가하게 앉아서 철학을 논하고, 고전을 읽고,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질 여유가 없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올 하반기 출판계를 강타한 '가벼운 글읽기'와 '내면적 위안을 추구하는 글읽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자작나무)'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는 지난해 10월에 첫 출간된 후 현재까지 모두 3권이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카운셀러이자 세미나 강사인 잭 캔필드와 마크비트 한센이 자신들이 경험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겪은 감동적인 일화를 모아 펴낸 '닭고기 스프'시리즈를 우리말로 옮겨 놓은 이 책은 현재까지 총 1백만부 이상 팔려 나가는 장기 홈런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1캠퍼스 청맥서점에서 자체 집계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6월 13일부터 12월 5일까지 집계한 결과에 의하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1'이 총 3백88권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면서 1위에 올라있는 상태고,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이야기·2,3'도 각각 3,4위를 차지해 이 같은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마음을 열어주는∼'의 성공은 우리 출판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따라하기 출판'을 불러오는 결과를 낳았다. '101가지 이야기'의 인지도가 높은 만큼 같은 이름과 형식으로 주제별, 대상별로 특화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 서점 관계자들의 얘기다.

'여자들의 마음이 열리는 101가지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간관계를 열어주는 108가지 따뜻한 이야기 1·2(들녘 미디어)', '20대에 꼭 만나야 할 50인(홍익출판사)',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등이 연이어 서점 진열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94년 '101가지 이야기'와 같은 시리즈의 첫 권을 번역한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를 출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도서출판 푸른숲도 제목을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로 바꾸어 내놓은 결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을 만큼 '101가지 이야기'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러한 인생지침서 및 명상서 등의 호조는 "정신적인 부분, 인간의 내면 등 사람들의 시선이 안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란 의견이 다수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원래 명상서 등에 관심이 높다는 것일 인정하더라도 이러한 배경에는 불안한 사회 배경이 한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들어 더욱 가속화된 취업불황과 경제난을 이러한 사회 배경을 이끌어 가면서 자기 위안적이고 가벼운 글읽기의 흐름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진지한 자기 성찰이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양시키는 책보다 가볍게 읽으면서도 그 속에서 나름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책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독서경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비판들은 '글읽기의 가벼움'으로 대변될 수 있는 부분들로, 우리 독서경향에도 인스턴트 바람이 불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연속적이지 않은 짧은 형식의 이야기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순간적인 감동, 판단을 제공하면서 결국 그들에게 표피적인 글읽기를 심어 주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시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열림원)'이라든가 정호승 시인의 '사랑하다 죽어버려라(창작과 비평사)' 등은 문학 작품의 퇴조 속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이 시들의 특징은 쉽게 씌여졌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정효구 교수(충북대 국문과)는 "류시화의 시집은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집이 쉽게 읽힌다는 것을 내용이 가진 수준의 높낮이와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류시화의 시집은 상당히 수준 높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주 쉽게 이루어져 있다"고 얘기한다. 결국 그의 시가 인기를 끈 이유도 내용의 충실성을 쉬운 방법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며, 이것이 오늘날 글읽기 흐름과 적중했던 것이다.

한편, 노동자 시인 박노해씨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청맥 조사결과 총 2백99권이 팔려나가 2위를 차지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외에 '노동의 새벽'이 다시 단장해 선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출간된 계간 문예지 '작가세계'에서 박노해의 문학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등 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박노해 시인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정효구 교수는 그의 시의 평이성, 자연성, 고백성, 등을 들고 있다. "자연미는 타고난 자연스럽게 창조된 언어와 형식, 체험과 소박한 꿈의 지향에서 나오는 것이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부당하게 소외당한 한 인간이 투쟁으로 인권을 찾아가는 과정이 독자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그의 평가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 비판은 상존한다. 결국 박노해 신인의 글이 감동을 불러온다해도 그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감동임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가벼운 글읽기'에 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노동운동가 박노해에 대한 역사적 조명보다는 그의 책들이 단지 하나의 가벼운 읽을 거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올 하반기는 '∼가지'열풍을 시작으로 자기 내면의 위안을 추구하는 글읽기와 쉽게 읽고 쉽게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가벼운 글읽기가 지배적으로 작용하였다. 결국 다양한 장르의 글읽기 또한 이루어지지 못했다. '람세스(문학동네)', '로마인 이야기(한길사)',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들녘)' 등이 꾸준히 인기를 얻긴 하였으나, 새롭게 출판계를 강타한 문학작품이나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책은 없었다.

불안한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이 책속에서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인을 위로해 주는 글읽기가 갖는 장점과 그러한 글읽기가 불러오는 '감동의 인스턴트화', '가벼운 글읽기'라는 단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독서경향 딜레마에 빠져 있다할 것이다. 독자들을 마냥 비판하기에 우리 사회가 너무 불안하다.

<김수윤 기자>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