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년은 (늙어) 여자도 아니다. 저년 하나 죽여도 된다. 내가 책임진다. 전농동(박순덕 열사)에서도 죽였는데, 죽이는 건 문제도 아니다"-인권하루소식 제981호

지난 7일 철거중에 성폭행사건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행당1-2재개발 지구를 찾았다. 철거된 지역 곳곳에 몇 개의 비닐천막과 텐트가 보였다.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 들어가서 보니 노숙 38일째라는 글자가 보였다. 아까 보았던 것들은 철거된 후 철거민들이 생활하는 곳이라 했다.

사무실에서 행당 1-2재개발지구 세입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하수복씨를 만나 볼 수 있었다.

"내가 그것을 보고 니들도 인간이냐고 했어"

9월 30일 철거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려던 위원장의 첫 말이었다.

이날 주민들은 성동구청으로 선전전을 나갔다. 행당1-2 재개발지역은 사업계획 고시일이 1987년 3월 10일이었다. 하지만 사업시행 인가일은 8년 8개월이 지난 1995년 11월 24일에 떨어졌다.

결국 재개발 후에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을 부여하는 기준일이 86년 12월 9일로 상정되어 86년 12월 10일 이후에 온 이곳에서 10년간이나 생활한 이들은 이러한 행정상의 문제로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다. 다른 지역들의 경우 길어야 3년 정도였는데, 이들은 이러한 부당함을 항의하기 위해 주민들의 대다수가 성동구청으로 간 것이다.

"여기 무전기 있잖아" 사무실 한쪽을 가리킨다. "우리가 나간 사이 무전기로 철거용역반원이 왔다는 거야" 서둘러 돌아온 이들을 전경 300여명이 막았다. 진입로를 차단하고 철거지역 주변을 에워쌌다. "그때는 사무실이 이지역 맨 위에 있었어. 보니까 사무실 2층에 사람들이 2십여명이나 몰려있는 거야. 큰일이다 싶어 전경 몰래 샛길로 들어가 사무실로 갔지."

여기서 하수복위원장은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은 옷이 벗겨진 주민 한명이 사무실 밖으로 내던져지는 것과 사무실 안에서 구타당하는 주민 아줌마들을 볼 수 있었다.

하수복위원장도 여기서 맞아 나중에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많은 주민들이 이때에 다쳤다고 한다. 원래 몇 명의 주민은 지금까지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돈 때문에 빨리 퇴원시켰다고 하며 그래서 미안해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에 사무실에 10여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한숨을 내쉰다.

거기에는 8살난 움직이지 못하는 뇌성마비 아이가 있었다. 미취학의 5살과 6살의 아이들이 있었다. 백일난 갓난아이가 엄마등에 엎혀 있었고 할머니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준'의 철거용역원들은 말로 하자는 주민들에게 욕을 해가며 때리고 심지어 그들에 옷까지 벗겼던 것이다.

"지금은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옆에 계시던 여자 총무인 김현숙씨가 지금의 상황을 말해 준다. 그 당시 철거를 했던 철거용역업체 '적준'과 경찰들을 고소하려 한다고 했다. 경찰은 직무유기죄로 고소하려 한다고 했다. 이때 이들이 구타당하고 옷이 벗겨지고 있었을 때 주위에서 열심히(?) 관람하고 있었다 하니 "원래는 더 일찍 고소했어야 하는데 당사자 분들에 자신이 당한 일을 공식화 하는 것인데 어디 쉬웠겠어"라며 늦어진 소송의 이유를 밝혔다. 많은 철거민들이 학생들과 연대하는데 이 지역도 철거용역원들이 온다고 하면 연락하여 서로 연대를 하느냐는 질문에 "학생들하고 연대를 하면 좋지. 그러나 그렇게 되면 더 폭력적으로 되기 쉽잖아. 그러면 더 많은 피해만 나니까 그러지 않을려고 해" 직장을 그만둔 이들은 천주교나 기독교 등 종교단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지금은 지난 3일 MBC TV에서의 반영으로 철거용역업체의 횡포가 잠잠해 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마중을 해주시던 하수복위원장에게 끝내 입주자격을 못받고 떠나게 되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우린 여기서 죽을 각오를 했어. 이렇게라도 해야지 다음부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인생기지"하수복씨의 대답이었다

<우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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