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굴지의 기업에서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문학전문지를 창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필자는 의구심부터 들었다. 분명 창간사에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원론적 수준을 넘어 21세기를 향해 세계문학으로 도약하는 우리 문학의 기폭제가 되겠다'는 신념을 담고 있지만 그 의도속에 혹시 문학전문지 발간을 기업 이미지 마케팅에 이용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들 말이다.

기실 그러한 필자의 의구심은 창간호를 대하면서 좀더 지켜보자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었는데, 최근 발간된 '21세기 문학' 2호는 이러한 의구심을 거두어 들이게 했다. 연 2회 발간되는 '21세기 문학'은 그 창간사에도 밝혔듯 과거 우리 문단재부에 강하게 존재했던 이념적 동질감이나 계파적인 동아리 의식을 초월하여 한국문학의 궁극적 발전을 꾀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우리 문예지들이 나름대로의 이념적 지향과 동아리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상대적인 빈곤감을 드러낸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계파초월의 의지는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계파초월의 노력은 인문학의 위기란 명제와 더불어 '창비'와 '문지'를 통해 단편적으로 시도된 적이 있지만 '21세기 문학'처럼 전면에 내세워 일관된 편집원칙으로 고수한 적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근래 발간되는 문예지들이 젊은 문학가들을 중심에 놓고 이들이 형성하는 문학적 동질성에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이 잡지에는 문단의 원로와 중견 문학인들의 연륜과 향기에 신인들의 참신성이 결합됨으로써 세대간의 장벽을 뛰어넘고 있다.

'21세기 문학'은 외형상 계파초월적 편집이란 특징 외에 가을호에는 인문학 전반의 위기 극복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필자는 가을호에서 평론가 염무웅과 송재학 시인의 대담 '세기말인가 신세계인가'와 정종화의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및 서정인, 전상국, 이청준, 최일남, 문순태 등 중견작가 소설 작품을 주의 깊게 읽었다. 이들 중 대담과 정종화의 논문은 현재 만연되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위기 극복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란 문제에 대한 그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기말인가 신세계인가'에서 염무웅은 '인문학의 위기와 그 대안적 가능성'을 위해서는 루카치식 이분법적 리얼리즘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제출하는 한편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공존을 강조한 녹색운동에 대한 평자의 관심을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말인 작금의 상황이 19세기 말에 겪었던 세기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인식하에, 인간성의 총체적 회복을 통한 인문학의 위기극복을 모색하고 있다.

정종화는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란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 후, 한국문학은 '한국인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문학'이란 자신의 견해를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넘나들며 증명해 내는 한편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한국문학의 정체성 확립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대담과 논문을 통해 '21세기 문학'은 인문학 전반에 만연된 위기극복의 한 축으로서 한국문학의 정체성 찾기란 우리 문단의 긴급한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이 잡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쁨은 문단의 중견들의 작품을 대할 수 있다는 점일 터이다. 최근 문예지의 젊은 작가 선호로 인해 문학적 명성과 향기만으로 존재하며 대하기 어려웠던 서정인, 전상국 등 문단 중진들의 작품은 중년의 시선을 통해 생의 의미를 관조하는 여유를 보여주고 있어, 감정 묘사나 가족사 등으로 답답함을 주었던 우리 소설을 반성케 하는 소설적 지표로 작용하리라 판단이다.

<강진구, 국문학 박사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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