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평가한 중국의 진시황은 '폭군'이다. 그는 중국의 장대한 역사속에서 천하를 통일한 만큼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가 폭군으로 낙인찍힌 이유는 다름아닌 민간의 서적을 불사르고 유학자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분서갱유'에서 찾을 수 있다.

더욱이 현대사회에서 창작표현의 자유가 한 나라의 민주주의 성숙도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에 부응하여 지난해 영화 사전검열을 위헌으로 판결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현대판 분서갱유를 저지하는 첫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발맞춰 영화진흥법 개정이 서둘러 진행되었고 이의 일환으로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륜)'를 없애는 대신 '한국공연예술진흥 협의회(위원장:서기원, 이하 공진협)'가 지난 10월 11일 발족되었다.

공진협은 발족 이후 한달여에 걸쳐 위원장 선출, 임원임명, 내규제정 등을 실시한 끝에 최근에 체제 정비를 완성해 그 거대한 몸집에 드러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이어져 내려온 강압과 규제, 영화수입을 허가하고 내용을 심의하는 공륜은 사실상 엄격한 검열기관이었다. 이러한 공륜의 폐지와 함께 출범한 공진협은 그동안 '가위질'로 불리던 정부의 타율규제가 아닌 '민간 자율심의 기구'란 슬로건을 가지고 등장했다. 따라서 공진협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의의는 기구 구성에서 행정권의 영향력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또한 심의 방법에 있어서도 사전심의가 불법으로 판명됨에 따라 가위질 대신 수입 추천 및 등급 부여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진협이 출범한 지 한달도 채 못된 현재, 옛 공륜의 형태에서 이름만 바뀌고 지도층만 늘린 '옥상옥'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우선 현재 공진협 위원장 서기원씨의 선출방식부터 의구심을 갖게 한다. 엄연히 민간기구의 출범이라는 점에서 행정권의 영향력을 벗어났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공륜 위원장 선출방식을 답습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개정 영화진흥법(이하 영진법)에서는 문화체육부 장관이 사실상 임명하던 위원장 선출방식을 바꿔 호선으로 뽑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9월말 정부관계자와 전 공륜심의위원들의 암묵적 동의하에 전 한국방송공사 사장 서기원씨가 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는 것은 공진협의 자율성을 의심케 하기 충분하다.

위원장을 비롯한 등급심의위원의 추천권이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에게 있다는 것도 공진협의 성격을 모호하게 한다. 왜냐하면 예술원은 문체부산하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최근 공진협이 추진하고 있는 '심의료 인상'도 문제가 되고 있다. 서기원 위원장은 심의료 인상에 대해 각 언론을 통해 "정부로부터의 완전한 재정 독립을 위해 심의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승인 여부를 문체부에 신청해 놓은 실적이다. 그러나 정부의 국고 보조금을 받는 이상 문체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공진협 회칙 13조에 '심의료 결정은 공진협 위원의 의결사항'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굳이 문체부에 승인을 의뢰했다는 것은 공진협이 과거 공륜시절의 '정부 눈치보기'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또한 심의과정에서도 과거 공륜의 경직성을 전혀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 상영금지된 김수영 감독의 '사랑의 묵시록'은 누가보아도 한국영화나 다름없음에도 제작자가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됨으로써 공진협의 심의가 전혀 탄력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련의 공진협의 활동을 주목해 볼 때 민간 자율심의 기구라 자처하는 지금의 공진협에 대한 비난은 응당 당연한 처사로 보인다.

어렵게 이루어낸 '영화진흥 개정·공진협의 출범'.

결국 헌법재판소의 영화사전심의 위헌 결정으로 추진되어온 '영진법 개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진법 일환인 공진협 출범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영상산업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대기업들의 영상산업 참여가 여러 형태로 가시화되고 잇는 시점에서 아직도 예술의 창작에 제동을 거는 권위는 문화적 경쟁력을 악화시킬 뿐이다.

'현대판 분서갱유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인가'

<김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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