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열풍'이 불고 있다. '부·명예 쥐려면 벤처를 택하랴'는 어느 신문의 부제는 사회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이 벤처산업에 적응하지 못하면 부와 명예를 놓칠 것이란 암시를 던지는 듯하다.

협박과도 같은 이러한 암시 덕분인지 지난 4일 대학원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창업 로드쇼(venture road-show)'에는 중앙대생 2백 50여명이 참석, 자리가 없어 계단에 앉아 있어야 할 정도로 열기가 후끈했다. 뿐만 아니라 오는 12일부터 사흘동안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리는 '97벤처기업 전국대회'에는 유망벤처기업 1백 20여개 업체가 채용 및 채용 설명을 위해 손을 뻗치고 있어 취업난과 맞물려 벤처열풍이 전국적으로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빌 게이츠 꿈꾸는 한국의 도전자 ○○○', '동양의 빌 게이츠 벤처기업인 ○○○.'

화려한 수식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빌 게이츠는 이미 신화적 존재가 됐다. 그의 성공신화는 '제2의 빌 게이츠'를 꿈꾸는 사람들만을 매료시킨 것이 아니라 학계나 정부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하다. 미국경제가 빌 게이츠의 사업전략을 본떠 부흥에 성공했듯, 우리나라도 그의 사업전략인 '벤처산업'을 통해 경제위기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중앙대 대학원 국제 회의실에서 열린 경영 포럼 '벤처캐피탈(벤처자본) 육성과 국가경쟁력'과 같은 학계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 포럼에서 윤영훈씨(한국종합기술금융 대표이사)는 벤처사업의 대두를 '경제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세계경제구조의 질적 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파악한다. "지식 산업의 성장과 기술변화의 가속화로 말미암아 단기간의 집중적인 연구개발과 순발력 있는 마케팅 활동이 요구되는 역동적인 기업환경 속에서 작고 유연한 기술집약적 벤처기업들이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계의 확신에 찬 벤처열풍에도 불구하고 비판점은 남는다.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적 풍토에서 벤처기업이 실질적으로 경제를 살려나가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의견을 궁극적으로 벤처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 영향에 눈을 돌리며 지금의 벤처열풍을 '벤처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한다.

김형준씨(바른정보 대표)는 벤처의 주된 업종인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열광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몇 명의 프로그래머가 아닌 수만명의 프로그래머가 고용되어 있는 거대기업"이며 "프로그램이라는 노동의 성격도 몇 명의 개인적인 창의력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규모 조직력과 분업에 의존하는 집단적인 노동의 생산형태로 바뀐지 오래"라고 말한다.

소규모 기업이 성장을 통해 대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단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어느시대 어느 때나 항상 있었던 일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벤처기업이 이제 와서 절박한 희망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경제적인 의미 외에도 다른 무엇이 있지 않은가"라는 그의 반문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금의 벤처열풍이 유연적 생산전략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의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사회문화적으로 조작된, '벤처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는 의문이 자연스러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토록 조작이 혐의가 짙은 벤처이데올로기에는 '신자유주의적 전략'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부든 학생이든 창업을 통해 경영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다수의 일반인들에게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각 개인에게 기업문화가 스며들게 함으로써 자본주의화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는 비판점을 남기는데, '기업가적 개인주의'를 이식시킴으로써 자본주의적 인간형을 양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능력주의'나 '동업자주의'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계약제를 대표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능력주의'는 사회적으로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한편, 벤처기업의 소규모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노사간 동업자주의'는 종업원 주주제 등 달콤한 미끼를 이용해 기업확장을 위한 막대한 노동량을 강요한다. 벤처이데올로기가 자본가에 대한 비판의식을 흐리게 함은 물론, 노동생산량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때 아닌' 벤처이데올로기는 일반인들을 시나브로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재생산해내는 것 뿐 아니라, 미국 경제 재건의 모형을 본뜬다는 점에서 새로운 종속경제로 옮겨갈 수 있는 문제점까지 노출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보완없는 천민적인 자본주의를 부추김은 물론이고 대외경제적으로도 미국의존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부수입'까지 올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찬호의 열풍에 열광하듯 사람들이 너무나도 벤처기업에 들떠있는 듯하다는 김형준씨의 마지막 제안은 눈여겨 볼만하다. "벤처기업이 공동체의식이 없는 사회, 가치기준이 오직 돈으로만 귀착되는 경쟁사회를 만들어 가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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