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산업사회라 일컬어지고 있는 오늘날 감시의 체계는 컴퓨터 문명이라는 미명하에 더욱 공고화되어 가고 있다. 자신에 대한 정보가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있어 스크린상에서 마우스놀림 하나로 자신의 프라이버시는 침탈당하고 만다. 이에 학술기획면에서는 '정보화 사회의 감시와 처벌'을 주제로 오늘날 정보화에 따른 감시체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대안까지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번 주에는 정보화 사회에서 도래된 컴판옵티콘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주>

정보기술의 발달은 생활의 편리를 크게 증진시켰다. 신용상태가 건실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한 장의 신용카드만 있으면 편안하게 세계일주를 즐길 수도 있다. 또 컴퓨터의 용량이나 전화선이 괜찮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기는 하지만, 구태여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찾지 않더라도 각종 정보를 집에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예들을 일일이 드는 것 자체가 사실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보기술은 정보의 처리 및 소통과 관련된 모든 일의 효율을 유례없이 향상시킴으로써 경제, 정치, 그리고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편리성의 증진을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물론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단지 편리성의 증진이라는 면에서만 따지는 것은 정보기술 측에서 보자면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정보기술은 훨씬 더 큰 구조적 변화의 가능성들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로 정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누추하기 짝이 없는 노골적 독재체제를 논외로 한다면, 현대 정치체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단연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이다. 모든 나라에서 주권재민의 원리는 헌법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일반 국민이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그렇게 녹녹한 일이 아니다.

이 점은 비단 우리나라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이같은 현실에 하나의 신선한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행정전산망을 통한 원격민주주의의 실행이나 각종 컴퓨터 통신망을 통한 새로운 공론장의 형성 등이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할 것이다.

몇가지 예들을 통해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듯이, 확실히 정보기술은 단지 생활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 사회구조 자체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변화의 방향과 내용이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과 내용을 다시 한번 따져 봤을 때, 우리는 편리성의 증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대립되는 개념을 접할 수 있다. 하나는 정보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감시사회이다. 둘 다 발달된 정보기술의 폭넓은 활용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사회적 변화에 주목하여 구성된 개념이지만, 그 함의는 여러 면에서 크게 대립되는 면모를 보여준다. 쉽게 말해서 정보사회가 양지를 강조한다면, 감시사회는 음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빛이 밝을수록 어둠도 짙은 법이지 않은가. 정보기술의 경우도 이같은 자연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사실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그 대표적인 예를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텔레 스크린을 통한 대중감시의 일상화. 말 그대로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되는 암울한 나날. '1984'는 이같은 감시기술을 이용하여 구축된 숨막힐 것 같은 독재체제를 그려 보인다.

이러한 사황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중요 개념이 '판옵티콘'이다. 제레미 벤담이 사회개혁의 수단으로 제시한이 감옥모형은 보이지 않는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함으로써 순응하는 주체를 낳게 된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위축되고 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모 백화점 여자화장실의 감시카메라는 이같은 현실의 일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지만, 우리는 이미 텔레 스크린을 통한 일상화된 감시체제 하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까닭에 많은 곳에서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삼가게 된다. 말하자면 '알아서 기는'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되는 것이다.

'화장실 사건'을 통해 충분히 알려졌듯이 CCTV를 통한 감시는 너무나 일상화되어서 그 예를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다. 현금자동지급기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사무실에서, 생산현장에서, 일반 주택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심지어 화장실이라는 최후의 개인공간에서까지 우리는 카메라 뒤에 가려있는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감시자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피감시자를 감시의 시선속에 묶어 둔다는 판옵티콘의 구상은 이같은 감시카메라의 작동을 통해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골적인 감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컴퓨터를 이용한 데이터 감시이다. 오늘날의 멀티미디어 관계형 데이터 베이스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감시사회의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컴퓨터 통신망은 삶의 편리성을 크게 증진시킨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용과정에서 우리가 남길 수밖에 없는 흔적들을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그대로 노출시키게 된다.

누구와 언제 전화통화를 했는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해서 무엇을 봤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사고 먹었는지 하는 등의 개인적 소사들이 쉽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정보추적과 수집의 기술적 가능성을 토대로 전능하지는 않을지언정 전지한 국가권력이 등장하고, 정확한 대상을 찾아서 판매한다는 이른바 '포인트 마케팅'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1984'와 판옵티콘으로 돌아가 보자. 이 개념들은 철두철미한 독재체제의 형성 혹은 감시권력의 불온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정보기술의 일상적 이용 속에서 관철되는 감시의 일상화는 독재체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강력한 국가권력만이 실행하는 것도 아니다.

정보기술을 이용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우리는 이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정보사회라면 곧 감시사회인 것이다. 양지는 음지를 배제하지 않으며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인간이 더욱 지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사람들은 컴퓨터를 '짓기 증폭기'로 불렀다. 그러나 똑같은 기계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차이와 차별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대중사회의 관리기'로서도 사용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보사회의 편리한 삶과 감시사회의 노출된 삶이 일체화되어 있는 현실!


<홍성태, 문화평론가, 미디어밸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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