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태종 이방원이 사병혁파라는 정책실현을 위해 반정의 공신이자 사돈인 이거이를 귀양 보냈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거이는 곧 왕의 부르심을 받고 중앙으로 복귀했다. 이러한 정략적 귀양은 이거이 한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수많은 신료들이 군주의 정책 또는 반대세력의 힘에 의해 유배당했다가 곧 잘 복권되어 중앙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빈번했다. 한 마디로 정치적 쇼다.

"전체적으로 쇼를 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재판 후 보수안정 논리에 비뚤어져 가고 있는 사회분위기를 보십시오"

1년전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학살자들에 대한 재판이 있을 당시 어느 세미나에서 학술 단체협의회 박진도 상임대표(충남대 경제학과 교수)가 되풀이되는 역사를 경고하고 나섰다. 청산정국이 사면 정국으로 전환된 것은 역사청산에 위배된다는 주장이었다.

그 후 1년동안 사회적 화제가 전·노 심판으로부터 차츰 멀어지면서 과거 청산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대선 정국이 몰려왔다. 대선 정국과 함께 우려했던 사면논의도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여당 뿐 아니라 심지어 야당까지 표를 위해 혈안이 돼 사면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박진도 교수가 말한 '쇼`다.

전·노의 사면이 타당성이 없는 이유는 단지 정치권이 기만행위에서만 찾을 수 있는데 아니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를 빌리자면 '잠들기 전에 아직은 가야할 길`이 남아있다. 사실 전·노 재판은 민중학살의 측면보다는 반란에 초점이 맞춰져 역사적 심판에 완성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재판의 주체가 5·6공을 계승한 현정권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전·노 심판은 뒷맛을 영 개운치 않게 한다.

'아직은 가야할 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5·6공에 의해 무수하게 침해당한 인원들의 사면·복권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들은 사회에서 전과자로 혹은 아직도 감옥소에서 양심수로 고난을 당하고 있다. 5·6공 시절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 전·노에 빌붙어 녹을 먹으며 수많은 악행을 일삼던 잔존세력에 대란 처벌까지 이루어진다면 진정으로 '과거청산`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는 전·노 심판을 진정한 청산으로 끝맺지 못한 모두의 책임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반성과 성찰이 없이 전·노 사면을 주장하거나 이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나치려하는 경향은 얼마나 비열하고 남음인가.

정략적으로 군주에 의해 객지로 유배됐다가 잊혀질 때 즈음 다시 중앙으로 슬그머니 얼굴을 들이미는 조선시대에나 가능한 전근대적 행태가 현대에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진정으로 한반도 역사에 부끄럼 없는 문장으로 새길 수 있는 기회에 전·노 사면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얼마나 어렵게 전·노를 구속시켰던가. 백골단에 구타를 당하면서 전국의 교수들이 일제히 서명을 하면서 이뤄냈던 게 아니던가. '잠들지 전에 아직은 가야할 길이 많다.`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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