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되살아나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내년 사망 1백주년을 맞는 비스마르크에 대한 전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의견들이 분분한 상황이다.

특이한 것은 90년대 들면서부터 비스마르크에 대한 평가가 그를 나치 등장의 전조로 보는 부정적 평가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민족국가를 탄생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로의 방향전환이다.

이러한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향수는 비단 독일에서나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 26일 동작동 국립묘지에서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비롯 박태준 의원, 신현확 전국무총리 등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정희 전대통령 18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백남억 민족중흥회 회장은 식사에서 "그분의 조국 근대화를 위한 집념과 민족중흥을 위한 숭고한 애국정신을 발판으로 오늘날의 난국을 극복하자"고 연설했다. 뿐만아니라 이 곳을 찾은 한 시민은 "현재와 같이 국가가 혼란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카리스마적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어느 정도인지를 반영해 주었다.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향수 등장

박정희에 대한 논의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한 대학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 3위에 박대통령이 꼽히면서 부터다. 처음 이러한 결과는 단지 매스컴의 가십란에 실릴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스컴의 관심대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방송사에서는 라디오 전파를 통해 이를 방송하였고, 일간지들은 박정희 부활이라는 논조의 글을 싣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박정희에 대한 논의는 신드롬으로까지 번져 나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작가 이인화씨가 그를 모델로 하는 장평소설 '인간의 길'을 발표했고, 중앙일보에서는 4월 28일부터 박 전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의 회고록을 20회에 걸쳐 연재하기까지에 이른다. 뿐만아니라 신한국당 경선과정에서 일부 후보자들은 '자신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자신과 키가 1mm도 다르지 않다', '성씨가 같다'는 등의 발언을 함으로써 자신들만이 박정희의 진정한 후계자임을 자처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박정희 신드롬은 어떻게 설명되어 질 수 있는가.

박정희 신드롬은 여러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는데 김상조 교수(한성대 경상학부)는 지난 25일 열린 학술단체 협의회(상임대표:박진도) 학술대토론회의 발제를 통해 경제적 측면에서 이러한 박정희 신드롬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부정적 유산:사이비 신자유주의'라는 그의 발제문에서 그는 "신자유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화 되어 있는 오늘날 극복 대상일 수밖에 없는 박정희가 신자유주의와 공존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하는 물음을 던지며 신드롬을 비판해 나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박정희 공존의 모순

신자유주의가 정치 경제 부분에서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재벌과 시장만능주의론자들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전도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이들이 개발 독재로 불리는 박정희식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유로 우리 사회재벌은 박정희 신드롬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가.

이에 대해 김교수는 "우리 사회의 재별은 박정희 신드롬의 피해자가 아니라 최대의 수혜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겉으로는 재벌을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이 정부주도의 박정희식 경제개발을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잘살아보자'는 이념아래 노동대중을 억압해온 박정희식 경제 개발정책의 부정적 유산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다. 자본축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대중의 알권리를 부정하고 나아가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을 위해 노동자대중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의 박정희 신드롬은 재벌의 든든한 후원자일 수밖에 없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극복대상인 박정희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대중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재벌위주의 경제체제에 있다는 것이 김상조 교수가 주장하는 논의의 핵심이다.

이성이 파괴된 역사뒤집기 현상

이러한 비판외에도 박정희 신드롬이 설 수 있는 기반은 무엇보다 그가 이룩한 경제 성장에대한 경험을 부인하기 힘들다. 1962년에 시작한 경제 개발로 수출은 7년만에 10억불에서 1백억불로 늘어났다. 같은 경우 서독은 11년, 일본은 16년이 걸린 경제성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동국대 강정구 교수는 "어떤 특정 분야라는 좁은 영역, 특히 박정희의 경우 양적 경제성장이라는 협소한 영역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전체를 평가함으로써 과대 일반화로 나아가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박정희 신드롬을 비판하면서 "김영삼 정권의 개혁실종에 대한 집단적 좌절감이 야릇한 허무주의와 낭만주의와 결부되면서 군사독재자를 영웅으로 부활시키려는 시대착오적인 역사뒤집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러한 박정희 신드롬은 "이성의 파괴고 우상의 신봉"이다.

한편 박정희 신드롬에 대해 진보진영이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반사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경제적 성과와 박정희 개인의 카리스마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효과를 발휘할 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상존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박정희 신드롬 창조자들이 노리는 최대 목표라는 것이다.

반민주사회 여실히 드러내

김상조 교수는 "이러한 위험에 대해 진보진영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는 박정희 신드롬에 대한 사회구조적 원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실천적 대응뿐이다"라고 주장한다. 박정희 신드롬은 하나의 신드롬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박정희가 한국사회에 남긴 부정적 유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박정희가 고개를 든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가 반민주사회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김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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