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동네라면 너저분한 구석도 있을테고 지나다니는 행인들의 웅성거림
도 있을 법한데, 상도동은 물을 뿌려 말끔히 대청소를 한 듯 깨끗하고 조용
하기 그지없다. "한사람 있는 거랑 없는 거 차이지 뭐. 없을 때하고 많이 달
라졌지. 특히 전경들이 많아졌어." 상도동의 한 주민이 지나가는 말로 건넨
것은 쉽게 흘려 들을 수 없는 얘기다."사실말이지, 우리 동네는 전경들이 많
아서 도둑들이 엄두도 못낸다니까. 그리고 동네가 깨끗한 이유야 위에서 보
는 사람이 있으니까 정화차원에서 하는 거고, 우리야 어부지리로 좋은 거지
"라는 복덕방 아저씨의 말은 전경들이 누구를 위해 보초를 서며 순찰을 하는
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제때 밥도 못 챙겨 먹고 우유 하나로 속을 채우
는 불쌍한 전경들을 변호하는 슈퍼마켓 아저씨. "애꿎게 고생하는 사람들이
바로 전경들이라구.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욕하면 안되지. 그
럼 안되는 거야"라며 타이르듯 전경들을 두둔한다.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
은 고참 전경은 "제대하고 나서 아니 지금도 많이 듣는 소리지만 `군생활 너
처럼 편하게 한 놈이 있냐'는 소릴 들을 땐 기분이 상하고 속에서 뭔가 끓어
오르는 것 같아요"라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아이들이 하루종일 묵묵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전봇대라고 놀릴 때엔 모자를 푹 눌러 쓰게 된다고 한다.
"순찰이나 보초를 설 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
해요. 어쩌다 쳐다보기라도 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고 그냥 민망하기도 하고
, 그래요"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수줍은 초년병의 고민이다.
상도동 전경들도 여느 군인들의 심정과 마찬가지로 휴가를 손꼽아 기다린다
. "무슨 옷을 입을까, 뭘하며 신나게 보낼까 똑같죠 뭐. 솔직히 여자친구가
아직도 바람나지 않은 게 고마워요"라며 자신을 날라리 군인이라며 놀리는
여자친구에게 항상 고맙다고 한다. 장난끼 가득한 그 전경은 변명같지만 군
대에서 훈련을 받는 일반 군인들과 전경들의 맡은 바 임무는 다르지만 그 임
무의 차이를 두고 경중을 가린다는 건 있을 수 없고 자기자리에서 맡은 임무
를 책임지고 누가 더 충실히 해나가는 가에 귀기울였으면 한다고 한다.잠시
씁쓸했던 그의 표정은 하교를 하는 초등학생들의 장난끼 어린 행동으로 금새
사라져 버린다. 아이들의 장난 섞인 발길질과 행동에 선배들의 눈치를 살필
만도 한데 그럴 정신이 없는 것 같다. 가방끈을 고쳐 메어주며 아이들을 돌
려보낸 후 선배의 따끔한 훈계가 그를 전봇대 마냥 또 다시 굳게 만든다.그
는 "아이들이 아저씨는 왜 항상 여기 있냐고 물어요. 명령 때문이죠 뭐. 보
초서라고 하면 서고 순찰하라고 하면 해야하는 게 다 명령에 복종하는 거예
요"라며 그외의 생각은 군인에겐 불필요한 것이라고 한다."억수같이 비내리
는 날 전경들이 우산없이 모자만 쓰고 비맞는 모습을 봤을 땐 애처롭기 그지
없어"라고 말하는 요구르트 파는 아주머니. "못난 사람 하나 때문에 우리가
이 무슨 고생이야. 전경들도 참 딱하지 말야"라며 혀를 차는 택시 운전아저
씨의 한탄.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전경들은 오늘도 그 못난 사람을 묵
묵히 감싸주고 있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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