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포츠에 대한 열기는 과히 광적이라 할만하다. 국민적 후원을 등에 업은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전반에 걸친 스포츠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이끈 장본인은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와 선동렬, 그리고 얼마전 일본에게 역전승을 거둔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14승을, 일본 프로야구에서 38세이브를 기록하고 시즌을 마감한 박찬호와 선동렬은 국민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회사 사무실과 역 대합실 등 텔레비전이 있는 곳은 초만원이었다. 환호성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이들의 경기는 국민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소속팀의 부진은 국민적 근심거리였고, 승수와 세이브를 올리는 날이면 국민들은 당사자보다 더 기뻐했다. 정권 창출을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정치판,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상황에서 이들의 승전보는 무더운 여름날의 시원한 청량음료와 같았다.

박찬호와 선동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뭔가 잘못된 사람으로 취급받을 만큼 그들에 대한 사회열기는 시즌이 끝난 지금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들의 열기는 야구를 모르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야구는 싫어도 박찬호와 선동렬은 좋다'라는 식으로 인식되었다. 그들에 대한 열기는 실로 야구를 초월했다 할 수 있다. 박찬호는 최강대국의 땅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펼친 영웅이요, 선동렬은 적의 땅에서 싸우는 투사였다. 잘생긴 외모와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는 박찬호는 국민들의 민족적인 우월감마저 자극시켰다.

이같은 스포츠 이상 열기 때문에 이득을 본 것은 언론과 자본이었다.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이들의 활약상은 정기뉴스와 각종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었다. 신문도 대문짝만한 사진을 곁들인 기사를 1면에 실으면 판매는 보장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이들을 광고에 끌어들이기 위해 거금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게도 이어졌다. 일본 땅에서 극적인 2대 1 역전승을 거두고 4연승을 기록한 그들은 해외파 야구선수들 못지 않은 스포츠 열기를 불러 일으켰다.

국민들에게 그들의 승리는 일본에 대한 피맺힌 원한을 풀어주는 것만 같았을 것이다. 축구 대표팀만큼이나 인기를 끌었던 것은 한국 축구 응원단인 '붉은 악마'였다. 일본 관중들로 꽉 들어찬 경기장에서의 붉은 물결의 함성은 축구선수들의 승리 못지 않게 국민들의 적대적인 대일 감정을 부추겼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박찬호와 선동렬, 그리고 한국 축구대표팀의 선전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몰고 온 스포츠 열풍에 언론과 자본의 썩은 냄새가 짙게 베어있는 것을 왜 우리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가. 자본과 언론은 한국의 국수주의적 감정마저도 그들의 돈벌이에 이용하는 것이다. 박찬호, 선동렬, 한국 축구대표팀은 물론 '붉은 악마'까지도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스포츠 상품이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스포츠는 젯밥이 더 중요한 것이다.

결국, 한국의 해외파 야구와 축구의 이상 열풍은 언론과 자본의 조작극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승리감을 만취해야 할 당사자는 국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야구, 축구를 좋아하네, 누구 선수와 관련이 있네'라고 떠벌리는 정치인들은 이 이상 열풍을 한편의 코미디로 만들었다.

차라리 야구와 축구가 좋으면, 쓸데없는 국수주의적 감정의 발로에 심취하지 말고 운동장에서 땀나게 뛰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이다.

<최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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