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춤과 음악의 여신들이 이 세상에 발레 예술을 구현시킨 후, 발레는 기쁨이 넘치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향유되어왔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의 변덕인지 발레가 성숙한 고장은 눈 덮인 러시아였다. 뮤즈의 자매들의 최종적으로 화환을 씌워준 무용수들은 러시아인들이었다. 이 말은 1974년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이 캐나다 9개 도시를 순회 공연할 때 캐나다 이벤트 사에서 제작한 팜플렛의 내용이다.

이 때 볼쇼이 극장은 소련을 대표하는 젊은 두 명의 주역 무용수로 미하일 바리쉬니코프와 빌렌 갈스치안을 주저 없이 선정했다.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무용수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역은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드, '지젤'의 알브레흐트, '돈키호테'의 바실이었으며, 하차투리안의 '스파르타쿠스'와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에트'에서는 타이틀 역을 맡았다.

세계 주요나라의 무대 중에서 그가 날아오르지 못했던 곳은 이데올로기의 장벽에 가로 막혀 있었던 한국이 유일한 장소였을 것이다. 러시아의 하차투리안을 배출한 아르메니아 태생인 그는 가장 표현력이 풍부하고 아무리 어려운 테크닉도 수월하게 처리하는 발레스타로 평가를 받았다. 볼쇼이 시절 그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호주를 비롯하여 남아메리카, 불가리아, 이란, 터키, 일본 등을 주역 무용수로 순회공연했다, 현재 남미에서 마에스트로로 불리는 그는 하차투리안의 스파르타쿠스답게 거장으로서 또 고향 아르메니아공화국의 국민예술가로서 역시 프리마돈나 발레니라 출신이자 국민 예술가 칭호를 딴 붕니 나디아와 함께 국립예술극장의 총감독으로 후진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갈스치안 부부는 97년 여름 중앙대학교 측의 초청을 받고 오랫동안 고민에 빠져 있었다. 결국 동방에 대한 평소 그의 호감과 동경이 그곳에서 흔히 한국을 지칭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의 행로를 택하게 했다.

그는 아내 나디아와 같이 중앙대학교의 안성캠퍼스 무용학과의 교수로 채용되어 그곳에서 새로이 보금자리를 틀게 되었다. 국내 대학교에서는 최초로 러시아권의 저명 발레 무용수와 발레리나가 초빙된 것이다. 이들에게는 역시 6살 때부터 정통발레를 공부하고 있는 13살짜리 아들이 있다. 이 아들도 스승이기도 한 부모를 따라 이곳으로 왔다. 이미 10월 첫째주부터 갈스치안과 나디아의 발레 수업이 시작되고 있다. 러시아에 비해 아직 한국학생들의 수준은 낮지만, 갈스치안과 나디아는 자신들이 옴으로써 한국발레의 수준이 향상될 것으로 믿는다고 확신하고 있다. 달인의 경지에까지 올라섰던 갈스치안과 나디아는 힘든 결정 끝에 한국에 온 이상 한국의 발레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한국의 모든 무용학도들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자신들의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중앙대 측과 갈스치안, 나디아 부부는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의 발레학도들을 위해 발레학교를 개설,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음악과 춤의 여신 테르프시코아가 이제는 한국의 무용수들에게 축하의 화환을 헌정할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김근식 <외대 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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