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말에 이뤄진 정부의 학원자율화조치는 학생운동진영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다 자율화조치의 명확한 배경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생들은 정치투쟁의 활성화와 이전까지 논의된 대중기반의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풀어야함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학원진영은 최초로 심화된 사상적 논의를 하게된다. 84년말, 명확한 목적의식에 바탕을 둔 사회구성체론과 변혁론을 제기하면서 향후 사회변혁의 전망과 이의 현실화를 얘기한 깃발논쟁이 그것이다.

이는 MT·MC 논쟁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깃발'이라는 소책자와 민주화추진위원회(이하 민추위)측의 입장을 수용한 MT그룹과 기존에 있던 지도부와 기타 여러 활동가들을 지칭하는 MC 그룹과 기존에 있던 지도부와 기타 여러 활동가들을 지지하는 MC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이 두 입장은 조직노선에서 볼 때 전시기의 무림·학림논쟁, '야학비판'·'학생운동의 전망'논쟁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무림-야학비판에 이어지는 MC그룹 역시 대중적 기반이라는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며 대중조직의 건설을 중시했다. 이에 반해 깃발-민추위는 전위조직 건설에 힘을 쏟으며 정치·투쟁노선에 선차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즉 전자의 겨우 학원 민주화투쟁으로 대중의 힘을 끌어 모은 뒤 사회민주화투쟁을 진행할 것을 주장했으며 후자는 학원민주화는 근본적인 사회민주화를 통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학생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MC그룹의 경우 학생회 자체가 투쟁체이며 스스로 투쟁의 방법을 확정하고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MT그룹은 학생회는 투쟁의 방법을 결정하기에는 그 역량이 부족하므로 비합법 이념서클과 결합하여 학생회의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생회 재건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 있어서 이러한 논의가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크다 하겠다. 이 시기의 논쟁이 전시기의 '대중투쟁노선'에 대한 논의를 아무 수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비판이 정당하다고 했을 때 현시기의 학생회 재건 움직임 역시 대중성에 기반한다는 논거로 대중의 한계 속에 머무르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85년에 학생운동이념은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삼민(민족, 민주, 민중)혁명론이 일반학생들에게까지 제시되기 시작하면서 전반적인 이념으로 정립되었으며 5월투쟁에서는 80년 이후 최고의 투쟁역량을 보이며 미문화원점거농성투쟁을 벌여내기도 했다.

초창기 MT그룹의 민족민주혁명(이하 NDR)이론 등은 보다 더 체계적이고 풍부한 변혁이론으로서 재정립될 것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85년말경 MT·MC 논쟁은 사실상 끝나고 반외세민중민주주의혁명(이하 AIPDR)이론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삼민혁명론이 반군사독재투쟁에 중점을 둔 가운데 반제투쟁과의 연결고리를 확보하지 못한 점을 비판하며 등장한 이론으로 후에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이하 NLPDR)이론으로 발전한다. AIPDR이론은 '한국사회의 기본 모순은 한국민중과 미제국주의 사이의 모순이다'라고 규정해 '기본 모순은 노동자·자본가간의 모순이다'라는 주장의 NDR이론과 상이한 지점을 가진다. 이러한 견해는 사회구성체논쟁이라 불리는 입장차이에서 비롯한다. AIPDR이론은 한국사회를 식민지이며 봉건적 요소가 남아있는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라고, NDR론은 신식민지 예속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86년 본격적인 사회구성체논쟁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이하 자민투)와 반제반파쇼 민족민주투쟁위원회(이하 민민투)로 표출된다.

87년 6월 투쟁이라는 일대의 전기를 맞이하며 학생운동진영은 거대하게 성장한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문제가 큰 화두로 자리잡게 된다. 이시기에 '맑스·레닌주의'원전의 범람과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연구는 이러한 이유로 해석된다. 아울러 NDR론의 부르주아혁명과 달리 반부르주아혁명인 민중민주혁명(이하 PDR)이론이 나타나 그 체계를 다듬어나가게 되나 채 완성이 되기도 전에 국제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되고 사상에 대한 회의와 패배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이 두가지 논쟁은 지금까지 학생운동의 거대한 두 흐름으로 귀결되어지다. 전대협·한총련을 이어오며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NLPDR론의 후예들과 NDR과 PDR이념의 좌파학운진영사이의 두가지 큰 흐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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